‘코스피 5000시대’ 흔드는 제약사들 ‘자사주 맞교환’ 카르텔
페이지 정보

‘코스피 5000시대’ 흔드는 제약사들 ‘자사주 맞교환’ 카르텔
본문

지난해 7월부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개정 상법이 시행됐다. 총주주의 이익 보호, 전체 주주의 공평 대우 등도 명문화됐다. 하지만 이후 상법 개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다. 법 개정 조항(제382조의3)의 표현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기업이나 이사회가 아직 해도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법원의 판례가 쌓이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는 이런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기업 조직개편 시 이사의 행위규범’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 제정작업에 착수했다.
한국 증시는 지난 1월22일 장중 코스피 5000을 달성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를 해소하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을 확보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증시가 다시 3000대로 되밀릴지, 아니면 7000대를 향해 계속 힘을 낼지 갈림길에 서 있다는 신중한 시각이 적지 않다. 자본시장과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지속 여부가 관건이라는 게 중론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 이행 활성화 등 추가 개혁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존 법제도 개혁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 핵심 중 하나로 1차 상법 개정에서 도입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이행이 꼽힌다. 한국 증시와 자본시장의 선진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1차 상법개정 뒤 자사주 거래 봇물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광동제약은 자사주 4.4%(138억원어치)를 같은 제약사인 대웅의 자사주 1%(138억원어치)와 맞교환했다. 또 자사주 4.44%를 휴메딕스의 자사주 3.03%와도 맞교환했다. 동시에 거래처인 동원시스템즈에 자사주 3.82%를 매각했다. 그 10여일 전인 12월12일에는 환인제약이 자사주 7.08%를 동국제약, 진양제약, 경동제약 등 3개 제약사의 자사주와 맞교환했다. 이는 지난해 7월 1·2차 상법 개정 이후 봇물처럼 쏟아지는 국내 제약사들 간의 자사주 맞교환을 통한 상호주 형성의 수많은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광동제약, 대웅, 휴메딕스, 환인제약, 동국제약, 진양제약, 경동제약 외에도 일동홀딩스, 국제약품,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삼진제약, 일성아이에스, 엘앤씨 바이오 등 국내 유수의 제약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자사주 거래 수법도 제약사 간 맞교환이 주를 이루지만, 거래업체 자사주와 맞교환이나 자사주 단순 매각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다수의 제약사가 짧은 기간 동안 집중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자사주 거래를 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마치 제약업계 전체가 ‘짬짜미’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은 “(제약업계 전체가) 미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우호세력과 맞교환을 하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서로 경영권 방어에 도움이 된다. 이런 일이 가능한 배경에는 국내 제약업계의 특성이 있다. 국내 제약사들 상당수는 회사 역사가 최소 수십년 이상이고, 그동안 오너경영체제가 지속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현재 최고경영자를 맡은 총수 2, 3세들은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서로 잘아는 관계가 많다. 서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백기사 역할을 하는 카르텔 구축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구조적 요인이다.

■ 지배주주 경영권 방어용…소수주주 보호 외면
대웅은 자사주 맞교환의 목적을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한 상호협력(자본제휴)”이라고 밝혔다. 다른 제약사들도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에 대비한 ‘꼼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여당은 애초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지난해 7~8월 1·2차 상법 개정 직후 단행하기로 했다가, 정기국회로 미루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2026년으로 해를 넘겼다. 이는 기업들에 ‘꼼수’를 동원해서 규제를 사전에 회피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2월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장은 “법안 처리를 최대한 빨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회사돈을 들여 사들인 자사주는 소각하는 게 원칙이다. 신기술 도입 등의 경영상 목적과 우리사주조합 등에 무상 출연 등 소각 예외 추진도 악용 가능성이 커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자사주를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원칙에 명백히 위배된다.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면, 소수주주들은 주식가치의 희석과 주주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자사주 맞교환을 통한 상호주 형성이 전형적으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상충 사안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사들은 개정 상법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규정에 따라 자사주 처리에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제약사 이사들이 자사주 처리 안건에 반대했다는 사례는 아직 한건도 보고되지 않고 있다. 안건에 찬성한 이사들은 상법상 주주 충실 의무 위반으로 소송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법 개정 이후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 우려가 제기된 사안은 제약사들뿐만이 아니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자회사인 신세계푸드의 상장폐지를 위해 공개매수를 추진했다. 주당 매수가격을 시가보다 높게 책정했지만, 주당 순자산가치의 60% 수준에 그쳐, 소수주주들이 대주주(이마트)에만 유리한 ‘헐값 상장폐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소수주주들은 주총에서 상장폐지 안건에 반대하기로 하고, 필요한 경우 상장폐지 무효 소송과, 이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엘에스(LS)그룹의 지주회사인 ㈜엘에스가 증손회사인 에식스솔루션즈의 기업공개를 추진한 것도 소수주주들로부터 ‘중복상장’으로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반발을 낳았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코스피가 장중 5000을 돌파한 1월22일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소수주주 권리 보호에 역행한다”는 취지로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자, 엘에스는 전격적으로 추진 중단을 발표했다.
■ 법무부·금감원 대응 지체
민주당이 지난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 필요성을 본격 제기하자, 기업들은 규제 회피를 위해 자사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했다. 자금조달과 우호지분 확보라는 ‘양수겸장’ 전략이다. 태광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6월 자사주 24.4%를 토대로 3000여억원 규모의 EB 발행을 추진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총수 일가가 주주로 있는 사모펀드에 투자할 계획이어서, 자사주를 활용한 지배력 유지 및 승계 활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대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주주가치 훼손과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EB 발행 및 자사주 처분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자금 조달 필요성이 인정되고, 그 수단의 선택은 이사회의 경영판단에 속한다며 기각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0월20일 EB 발행 시 주주 이익에 미치는 영향 등 주요 사항을 공시하도록 제도를 강화하면서, 태광은 EB 발행을 자진해서 철회했지만, 상법 개정만으로 소수주주 보호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현실적으로 기업, 이사회, 주주, 법원 모두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선진법제포럼을 개최하고, 이에 관한 가이드라인 제정 방향과 초안 논의를 시작했다. 이르면 상반기 안에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 마련에 특정 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 조직개편은 상시로 가능하다. 법 개정 취지를 살리고, 기업과 시장 현장에서의 혼선을 최소화하려면 가이드라인을 가능한 한 조속히 확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회장 이남우)은 “지난해 7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들이 나온 지 6개월이 지나 이미 기업들은 자사주 대상 EB 발행, 지배주주 간의 친분을 이용한 상호주 교환 등을 통해 입법의 효과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조속한 후속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1대 국회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처음 발의했던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는 상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는 자사주 맞교환에 대해서도 EB 발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사회가 주주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심의하고, 그 결과를 자세히 공시하도록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미국 모범 ‘MFW 기준’
법무부는 오랫동안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에 반대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초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상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무부는 이때도 “취지는 공감하지만, 상법은 회사 전체에 적용되는 일반법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부정적이었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주도로 상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법무부가 가이드라인에 기존의 소극적인 입장을 반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8단체는 1월26일 공동호소문을 통해 “상법과 형법에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해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경영판단원칙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와 적절한 절차에 따라 선의로 내린 경영상 판단에 대해서는 그 결과가 회사에 손해로 돌아가더라도 사후적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적용을 말아달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펄쩍 뛴다. 기업재편과 같이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이 큰 사안의 경우 무조건적인 경영판단원칙의 적용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의 2014년 ‘MFW 사건’ 판결에서 정립된 이른바 ‘완전한 공정성’ 기준에 주목한다. 당시 맥 앤드루 앤 포브스 홀딩스는 자회사인 엠앤에프 월드와이드(MFW)와의 합병을 위해 MFW의 소수주주들에게 주당 현금 24달러로 주식매수 제안을 했다. MFW는 소수주주 축출합병의 승인조건으로 독립적 이사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의 승인, 이해관계가 없는 소수주주의 과반수 찬성을 제시해서 충족시켰다. 그래도 합병에 반대하는 소수주주들은 지배주주의 신인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했고, 주 대법원도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미국은 MFW 사건을 계기로 지배주주-소수주주 간 이해상충 사안의 경우 독립적 사외이사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승인과, 지배주주를 제외한 소수주주만의 다수결 찬성 같은 ‘완전한 공정성’ 기준이 충족되면,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법리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후 추가 판례를 통해 소수주주 축출합병을 넘어 이해상충이 있는 일반적 거래에 대해서도 ‘완전한 공정성’ 기준이 확립됐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윤상녕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이해상충 사안의 경우 미국처럼 ‘완전한 공정성’ 기준을 충족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관련링크
-
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242806.html
20회 연결
- 이전글[영상] [2026 한겨레 기업지배구조 국제포럼] 26.02.11
- 다음글코스피 7000과 3500 갈림길 …지배구조 개혁이 ‘답’ 26.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