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코리아’ 탈출, 기업지배구조·자본시장 혁신서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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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코리아’ 탈출, 기업지배구조·자본시장 혁신서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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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대만의 ‘밸류업’(기업·주주 가치 제고) 성공 사례는 한국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웃 나라가 이런 노력을 할 때 우린 무엇을 했기에 아직 ‘코리아 디스카운트’ 타령인가?” 두 나라는 기업 경영과 자본시장의 체질을 바꿈으로써 실물경제도 활기가 돌게 하는 선순환을 이뤄냈다. 기업지배구조가 선진화하고 주주 권익이 높아지자 해외 자본의 유입이 늘고 국민도 주식투자를 통해 자산 증식에 나서게 됐다. 일본과 대만의 주가지수가 최근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는 것이 그 성공의 징표이다.
‘잃어버린 세월’이 길게는 20년 이상이다. 늦었지만 우리도 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언했고, “자본시장 혁신을 통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국정과제에서 제시했다. 7월과 8월, 두차례의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명시 같은 기본적인 개혁 과제가 법제화됐다. 하지만 개혁이 용두사미가 된 일이 너무 잦아 국민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또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면 일본과 대만의 경험에서 무엇을 참고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우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가지수를 얼마로 끌어올린다는 협소한 목표로는 개혁의 멀고 험한 길을 갈 수 없다. 기업 체질과 경제구조를 바꾸는 장기 성장 전략으로 접근해야 추진력이 생기고 폭넓은 국민 지지 확보도 가능하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서의 탈출을 자본시장 개혁으로 시작한다는 목표 아래 2013년 밸류업 정책의 시동을 걸었다. 일본 기업이 도전의식이 없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이유를 거래 은행과 기업의 상호주 보유에 기반한 폐쇄적 지배구조의 문제에서 찾고, 해법으로 연금 등 기관투자자나 해외 투자자를 ‘메기’처럼 투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기업지배구조 코드(기업이 지켜야 할 규범)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역할과 규범)를 국제 기준에 맞게 제정하고, 금융청과 거래소가 중심이 돼 일관되게 실천했다. 기업지배구조 혁신은 자본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으로 이어졌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경제 회복으로 이어졌다.
대만도 교역에 의존하는 소규모 경제에는 해외 자본 유입이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라고 보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국제 기준에 맞춰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하고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 문화가 정착하도록 노력했다. 돈이 저성장 산업에 고여 있지 않고 자본시장을 통해 돌도록 하려고, 한때 기업이 배당을 하지 않고 쌓아둔 순이익에 10%의 유보세를 물리기도 했다. 이런 것이 장기적 성장 전략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그사이 국민당과 민진당 사이에 정권이 바뀌었어도 정책 기조가 흔들리지 않고 추진될 수 있었다.
21대 국회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가 담긴 상법 개정안을 처음 발의했던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도 단순히 주가 상승을 목표로 할 게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선진화와 주주 권익 강화가 자본 효율화 등 경영 혁신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종합적인 계획과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행의 방법론도 중요하다. 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므로 긴 호흡으로 단계적 계획을 짜야 한다. 다만 제시한 목표와 일정을 최대한 지켜 기업과 금융시장이 예측 가능하게 하고, 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일본과 대만은 금융당국, 거래소, 기관투자자, 증권 유관 기관, 법원 등 다양한 참여자들의 생태계를 이뤄 기업이 정해진 규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기업이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의 이점을 알고 내재화하도록 문화를 조성한 노력도 돋보인다. 지금 우리는 장기적 계획과 로드맵을 세우고 일관되게 실천할 컨트롤타워가 어디인지도 불명확하다.
그 밖에도 우리에겐 일본, 대만에 없는 ‘재벌 체제’라는 큰 벽을 넘는 과제가 있다. 그동안 여러 자본시장 개혁 과제가 재벌의 강력한 영향력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왜곡됐다. 사외(독립) 이사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스튜어드십 코드, 지주회사 같은 제도도 제 기능을 못 하거나 변질됐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20∼30%의 지분을 가진 사실상 소수주주인 사람들이 지배주주가 돼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하고 사익을 챙겨왔다”며 “이런 핵심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제도 개선이 그간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상법 개정을 두고도 대기업은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며 반발한다. 대만을 취재하며 “이사회에서 독립 이사와 일반 주주의 발언권이 세지면 경영진이 불편해하지 않느냐”거나 “해외 자본의 경영권 침탈 시도가 늘지 않느냐”는 질문을 계속 했지만, 질문을 잘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마치 태어날 때부터 부여된 천부인권처럼 주장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의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런 점에서 개혁에 성공하려면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주장과 행동에는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대만은 사실상 공공기관인 증권선물투자자보호센터(SFIPC)가 모든 상장사의 주식 1천주씩을 사서 갖고 있다. 필요하면 20명 이상의 주주를 모아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주총에도 참석해 부적절한 행동을 한 이사의 해임도 요구한다. 한국 같으면 “사회주의” 운운하며 반발할 일이지만, 대만은 “일반 주주 보호에 양보는 없다”는 태도이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 이머징마켓 대표는 “한국 자본시장은 올해 기술적 반등에 그칠지, 근본적인 개혁의 원년으로 기록될지의 갈림길에 있다”며 “투자자들은 과도한 규제를 하라는 게 아니라 대기업 앞에만 가면 굽었던 주주 이익 보호, 견제·감시를 위한 제도와 정책이 일본, 대만, 인도 등 아시아 다른 나라만큼이라도 회복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끝>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곽정수 선임기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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