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AI가 대체 못해”…위기, 기회로 뒤집은 사람들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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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AI가 대체 못해”…위기, 기회로 뒤집은 사람들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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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여수시사회적경제마을통합지원센터장(왼쪽)과 박철훈 지역과소셜비즈 대표이사가 7월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28) 사회연대경제 지역 현장 활동가
지난 1년간 이어온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기획연재는 지역 소멸 위기에 맞서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동네들을 찾아다닌 기록이다. 광주 양림동, 전남 강진 등 골목과 마을공동체를 되살린 지역부터, 경기·서울의 사회적경제 조직과 도시재생·자원순환 현장, 대구·경북의 청년창업과 문화예술, 경남·충남·대전의 청년정책과 복지·환경 실천까지, 세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특별한 동네’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이 연재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취재해온 동네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한 동네가 특별해지는지를 마지막으로 짚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박철훈(47) 지역과 소셜비즈 대표이사(이사장)과 김태현(45) 여수시사회적경제마을통합지원센터장을 지난 7월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몇 년간 전국의 이름 없는 동네들이 어떻게 마을기업을, 사회적기업을, 새로운 서비스를 일궈내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다. 박 이사장은 경북에서, 김 센터장은 전남에서 각각 지원조직을 이끌며 수백 곳의 성공과 실패를 목격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물었다.
소멸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오늘날 지역 소멸 위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박철훈: “혁신은 역사적으로 항상 변방에서 생겨났습니다. 결핍돼 있으니까요. 창조적 소수가 그 결핍을 해소하려고 혁신을 하게 돼 있어요. 인공지능(AI)가 온 영역을 덮겠지만, 소멸만큼은 그렇지 못합니다. AI는 과거를 학습하는데, 소멸 대응은 인류가 겪어본 적이 없는 미지의 영역이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오히려 고부가가치 영역이 될 겁니다.”
김태현: “다들 지방 소멸을 막으려면 외부에서 청년을 유입해야 한다고 하는데, 정작 지역에 계속 있던 사람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장치는 매우 미흡합니다. 외부에서 오면 집도 주고 저것도 주면서, 원래 있던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안 주거든요. 그럼에도 계속 있는 사람들은 기존 방식으로는 삶을 지속하기 어려우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젊은 층이 유입되는 거라고 봅니다.”
박철훈 이사장은 경북 청도에서 나고 자라 기업지배구조를 공부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경북 지역의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을 20년 가까이 지원해왔다. 김태현 센터장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2002년 목포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 제정, 2006년 신안 염전 지적장애인 인권침해 사건 구제 활동을 거쳐, 2012년부터 전남 지역 사회적경제 현장을 지켜왔다.

박철훈 지역과소셜비즈 대표이사는 우리 동네를 특별하게 만드는 조건으로 사람과 아이디어, 투자, 조력자를 꼽았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동네를 특별하게 만드는 네 가지
―우리 동네를 특별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박철훈: “네 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내부든 외부든 있어야 하고, 반드시 마을 안 사람과 결합돼야 해요. 둘째는 아이디어입니다. 남을 복제하지 말고 우리 동네만의 특별한 아이디어여야 하죠. 셋째는 그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어줄 투자입니다. 넷째는 이 세 가지를 엮어주는 조력자예요. 이 조력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사실 성패를 가르는 마지막 변수입니다.”
김태현: “첫째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신뢰를 꼽겠습니다. 어느 마을에 어떤 지원사업 정보가 있는지가 주민 전체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지 않으면, 그 정보를 먼저 아는 특정인이 권력을 갖는 구조가 생겨요. 관과 민의 신뢰, 주민과 주민 간의 신뢰가 쌓여야 공공재가 유지될 최소한의 조건이 됩니다. 둘째는 협력입니다. 혼자 하기엔 어렵거든요. 그런데 그게 되려면 특출한 사람이 필요해요. 자꾸 만나서 논의를 해야 협력의 기반이 만들어지고, 그게 안 되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시작은 할 수 있지만 결국 깨지더라고요.”
고흥의 취나물, 여수의 간장
이들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 장면들을 사례로 들려줬다. 김태현 센터장이 소개한 전남 고흥의 어느 마을기업은 원래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던 대표가 어르신들과 뭔가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사업이었다. 마을에 흔한 취나물에 눈을 돌렸던 그는, 전국 생산량의 70%가 고흥산인데도 죄다 강원도에서 포장돼 강원도산으로 팔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6평짜리 가공공장에서 고흥 취나물 유통사업을 시작해 1년 만에 홈쇼핑에 진출했다. 규모가 커지자 채식주의자가 즐겨 찾는 나물 잡채 밀키트를 ‘사찰음식’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딩해 유럽에도 내놓았다. 지금 이 마을기업은 음식 콘텐츠와 공간 조성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단계에 있다.
반면 전남 여수의 한 마을은 국토교통부의 취약지역 거점 지원 사업으로 4년간 소득사업 아이템을 준비했다. 주민들이 실습까지 거쳐 최종적으로 낸 답은 간장이었다. 브랜딩도, 시제품도 다 끝냈는데, 정작 사업장으로 지어진 건물의 용도가 ‘근린생활시설’이라 제조시설 허가가 나지 않았다. 판매는커녕 생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김 센터장은 이 사례를 계획 수립 단계부터 주민과 소통하지 않고 행정과 용역사가 하드웨어부터 지어놓은 전형적인 실패로 꼽았다.
성공과 실패, 그 결정적 차이
박철훈 이사장이 든 성공 사례는 경주의 한 오래된 폐가다. 청년들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을 리모델링해 에어비앤비 평점 4.98점짜리 숙소로 만들었다. “청년의 힘으로 마을을 바꿔놓았어요.” 그는 성공을 판단하는 잣대로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정주인구처럼 주소를 두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이나 관계 때문에 계속 드나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늘어났느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일 때문에 경주에 왔다가 너무 좋아서 다음엔 가족을 데려오고, 그 지역 농산물을 계속 사 가요. 일본의 관계인구 개념과 비슷하죠.”
반대로 하드웨어부터 짓고 보는 식으로 흘러간 지역개발 사업이 실패한 사례다. 번듯한 센터 건물은 지었는데 정작 그걸 운영할 사람이 없고, 휴양마을을 조성해놓고는 전기세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식이다. “어촌뉴딜 사업만 해도 100억 원 중 70%가 건물이나 시설 같은 하드웨어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지어놓기만 한다고 어촌에 무슨 발전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유지·관리해야 할 골칫거리 하나가 더 늘어나는 셈이죠.”

김태현 여수시사회적경제마을통화지원센터장은 지역 지원사업이 성공하려면 설계가 보다 정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보조냐 위탁이냐, 그 사이의 함정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반드시 바꿔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박철훈: “민간경상보조라는 게 원래 민간이 하고 싶은 일을 행정이 거들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위탁하듯 과업을 던져놓고 돈은 보조 방식으로 줘요. 일을 시키면서 인건비는 주지 말라는 거니까, 사실상 착취입니다. 지침도 낡았어요. 하루 종일 강의를 해도 강사료가 15만원이고 교통비도 안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만든 기준을 지방에 그대로 적용하니까 현장이 경직될 수밖에 없죠. 자원 배분의 결정권과 사후 책임까지 민간에 100% 넘겨야 합니다.”
김태현: “설계의 디테일이 문제라고 봐요. ‘청년 일경험’ 사업만 해도 청년 인건비와 기업 운영비를 지원하는데, 정작 대중교통이 없는 농촌 지역까지 출퇴근할 방법은 빠져 있어요. 지방자치단체가 추가하면 된다고 하지만, 예산 절벽 상황에서 그게 쉽지 않습니다. 광역시와 도의 예산 매칭 구조도 다릅니다. 광역시는 자치구가 사업비를 전액 편성하는데, 도 단위는 시·군이 35%를 부담해야 해요. 가난한 지자체일수록 더 지원이 필요한데, 그 매칭 비율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시장주의적 사회주의 마을”
두 사람 다 근본적으로는 “지원하되 간섭 말라”는 원칙이 지켜지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봤다. 박철훈 이사장은 “어떤 데는 지원금이 3분의 1만 내려와도 잘 되는 곳이 있다”며 “결국 지자체장과 공무원이 자원 배분의 권한과 사후 책임까지 민간에 넘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표현을 썼다. “시장주의적 사회주의 마을, 사회주의적 주식회사.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현실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는 방식입니다.”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 자체는 철저히 시장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소멸하는 냉정한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벌어들인 이윤이 흘러가는 방향은 다르다. 개별 주주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 전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려고 하면 안 통하는 거죠. 그런데 벌어서 공동체에 준다, 그러면 통하는 겁니다.” 시장의 경쟁력과 공동체의 분배 원리를 한 몸에 담은 조직, 그것이 그가 말하는 ‘시장주의적 사회주의 마을’이자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다.

박철훈 지역과소셜비즈 대표이사는 경북 청도에서 나고 자라 기업지배구조를 공부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경북 지역의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을 20년 가까이 지원해왔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태현 여수시사회적경제마을통화지원센터장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2002년 목포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 제정, 2006년 신안 염전 지적장애인 인권침해 사건 구제 활동을 거쳐, 2012년부터 전남 지역 사회적경제 현장을 지켜왔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텃세와 객기는 한 세트다”
―지역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박철훈: “돈을 들고 오라는 게 아니라 자기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텃세와 객기는 항상 한 세트라는 걸 알아야 해요. 기존 주민이 텃세를 부리면 안 되지만, 내려온 사람도 객기를 부리면 안 됩니다. 이 마을은 우주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기존 주민들이 만들어놓은 거예요. 나는 지금 무임승차하는 겁니다. 그 감사함에서 출발하면 문제의 99%는 사라집니다.”
김태현: “창업하기 전에 테스트를 해보세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같은지, 100명이든 10명이든 실제로 팔아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법인부터 만들고 공동체 조직부터 만들면 깨질 가능성이 큽니다. 마을 단위에서도 100명이 사는 마을이면 최소 20~30명 정도는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그룹을 미리 만들어둬야, 실제로 소득사업을 할 때 활용할 수 있어요.”
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되면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박철훈 이사장은 비유 하나를 다시 꺼냈다. “사회에도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반도체가 일정 전압에 도달해야만 신호를 켜듯, 지역의 사업도 이윤만 좇아서는 안 켜지지만, 공동체에 대한 기여로 이어질 때는 비로소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는 소비자에게서도 같은 가능성을 읽어냈다. “요즘은 ‘미닝아웃(meaning out)’이라고 하죠. 예전엔 친구가 값비싼 신발을 신으면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소비를 부끄러워합니다. 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되면 사람들은 해외로 나가는 대신 농산어촌을 찾기 시작해요. 서구도 그랬습니다.”
소멸을 향해 가던 동네가 다시 특별해지는 계기는, 어쩌면 정책이나 지원금보다 먼저 도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싹트고 있는지 모른다. 값비싼 소비 대신 의미 있는 소비를, 유명 관광지 대신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을 찾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그동안 결핍됐던 우리 동네야말로 이들이 다음으로 향할 곳이 될 수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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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668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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