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면 농부?”… 그 편견을 깨러 청년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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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면 농부?”… 그 편견을 깨러 청년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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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감물면에 있는 자연경험공간 '에트하우스' 앞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한때는 밭이었던 자리다. 에트하우스 제공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27) 충북 괴산 뭐하농과 농라이프
충북 괴산군 감물면에서 처음 맞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냄새다. 바람이 한 번 쓱 불 때마다 흙냄새가, 풀냄새가, 꽃이 피는 계절이면 꽃향기가 실려 온다. 이 동네가 전부 유기농 단지라 가능한 일이다.
너른 잔디밭 한가운데 단정한 건물 ‘에트하우스’가 서 있었다. 한때는 그냥 밭이었던 자리다. 건물 옆으로 300평 텃밭이 펼쳐져 있고, 작물과 작물 사이사이마다 허브가 심겨 있다. 같이 심으면 서로 돕고 자라는 ‘동반 작물’들이다. 밭일을 하다가 무심코 발을 옮기면 민트 향기가 툭, 툭 올라온다. 처음엔 이 방식을 반대하던 청년 농부가 어느 날 말했다. “일할 때 민트향이 올라오니까 너무 행복한데요.”
에트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경험공간이 펼쳐진다. 메뉴판만 봐도 계절이 보인다. 비트로 담근 청과 우유가 어우러진 ‘농부 라테’, 여름이면 ‘초당옥수수 라테’, 가을 햅쌀이 나오면 ‘햅쌀 라테’, 겨울이면 늙은 호박으로 담근 ‘호박 셰이크’. 올해부터는 아예 ‘라운지’ 형태로 바꿔, 제철 채소 바와 직접 허브를 블렌딩해 마시는 티 스테이션을 들였다. 커피는 구석에 아메리카노, 라테 정도만 작게 남겨 두었다. “우리는 커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마시는 경험을 하는 공간”이라는 에트하우스 대표 이지현(39)씨의 생각이 묻어나 있다.


도시에서 도망친 게 아니라, 다른 삶을 선택한 것
이곳을 만든 사람은 서울에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조경설계사로 일하던 한승욱(43)·이지현씨 부부다. 2017년 괴산으로 내려와 표고버섯 농사로 시작한 이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괴산으로 내려오기 전 이들 부부는 조경 분야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일했다. 마감이 있으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야근의 연속이었다. 결혼하고도 함께 밥 한 끼도 같이 먹는 날이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겠구나 싶었어요.”
도시에서 도망치고도 싶었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도 싶었다. 그래서 기준을 세웠다.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삶,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삶, 그리고 하루 한 끼 정도는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삶.
“남들은 시골은 은퇴하면 간다는데, 다 늙어서 요양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가장 젊고 건강할 때 차라리 우리에게 시간을 내주자고 했죠.”(이지현씨)
그 세 가지를 모두 가능하게 하는 직업이 농부밖에 없었다. 연구원 출신답게 철저히 조사했다. 가락시장 작물 시세를 수십 년 치 분석한 끝에, 표고버섯이라는 작물을 골랐다. 2주면 수확해 바로 현금화가 되고,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 대기업이 시스템화하기 어려워 작은 규모로도 가격 경쟁이 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가락시장에서 표고버섯 값을 가장 잘 쳐주는 산지를 찾다가 괴산 감물면 작목반을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이지현씨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처음엔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토마토 주스를 사 들고 작목반 어르신을 찾아다니며 “표고버섯 배우고 싶어서 왔다”고 인사하면, 일주일은 반응이 없었다. “돈 안 되니 서울로 가라”며 자기 자식도 못 내려오게 막는다던 이웃들이, 계속 찾아오는 부부에게 결국 마음을 열었다. “거의 농사 1년을 같이 짓는 느낌이에요. 지나가다 심심하면 들러서 보시고, 전화하면 바로 달려오시고.”
손이 많이 가는 표고버섯은 마치 초보 엄마가 키우는 아기 같았다. 그렇게 1년, 학원 강사를 병행해 생활비를 충당하며 농사를 배웠다. 2017년 12월, 우리나라 최초로 청년 창업농부 지원 사업이 생겼다. 그전까지 농촌에서 청년이 무언가 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었다. 그 1기 지원을 받으며 남편은 농업에 전념했고, 버섯 ‘형님들’이 끌어준 덕에 유기농 밭농사까지 1만평 규모로 넓혔다. “2~3년은 정말 재미있게 농사 지었어요. 너무 행복했어요.”(이지현씨)

청년 농부들이 모이자, 같은 고민이 보였다
농사가 자리를 잡아가자 비슷한 고민을 안고 괴산으로 내려온 청년 농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괴산에는 청년 농업인이 많았다. 후계농인 친구, 도시에서 내려온 친구, 아버지를 따라온 친구, 도망쳤다가 부모가 편찮아 돌아온 친구.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민이 놀랍도록 비슷했다.
“농업이 너무 좋은데, 30년 뒤에도 농업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매일 밭에서 자연을 만지는 이들은 기후변화를 몸으로 느꼈다. 봄엔 가뭄, 가을엔 장마. 한 해 농사가 통째로 망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를 둔 친구들은 “우리 아이가 여기서 살고 싶어 할까”라는 물음 앞에서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여기서 이지현씨는 문제의 본질을 다르게 봤다. “문제가 자연재해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농산물 10t을 못 해내서가 아니라, 1t만 나와도 농업인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안 되는 게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 구조의 밑바닥엔 농업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이 있었다.


“농부는 자연과 사람을 모두 살리는 직업”
“의사가 뭐 하는 사람이냐 물으면 ‘사람 살리는 사람’이라고 해요. 그 행위의 가치로 직업을 표현하죠. 그런데 농부는요? 80대 어르신한테 물어도, 유치원생한테 물어도 똑같이 ‘채소 기르는 사람’이라고 말해요. 노동의 행위만 인식하지, 그 행위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요.”
이지현씨는 농부가 마음만 먹으면 자연과 사람을 다 죽일 수도, 다 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자연과 사람을 모두 살리는 직업인데, 왜 우리는 농부를 은퇴해야만 하는 일처럼, 공부 못하면 하는 일처럼, 할 거 없으면 하는 일처럼 인식할까요?”
특히 청년 세대는 누군가를 부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농업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나. 농산물이 아닌 것으로 농업의 이야기를 해보자. 농업을 문화로 표현해 보자. 아무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뭐하농’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9년 관광두레 사업으로 출발해, 2020년 괴산 청년 농부들과 함께 농업회사법인 ㈜뭐하농을 세웠다. ‘뭐든지 하는 농부들’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자본금도 없었지만,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대표적인 실험은 괴산의 농산물을 활용한 채소 디저트 메뉴를 개발하고, 도시 청년들과 농촌의 삶을 주제로 소통하는 토크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유기농 채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채소 도슨트’ 프로그램과 농부들의 감각적인 식경험 공간인 ‘뭐하농 하우스(현 에트하우스)’ 구축으로 이어졌다.

정착률 87%, 그 비결은 ‘떠먹여 주지 않은 것’
농촌 정착에 성공한 청년 농부들은 그 경험을 더 많은 청년과 나누기로 했다. 2021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외지 청년들을 괴산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농촌의 낭만을 걷어내고 실전 비즈니스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한 ‘괴산 두 달 살기’ 프로그램은 놀라운 결실을 보았다. 수료생 23명 중 18명이 실제로 지역에 정착하거나 정착을 준비하며 무려 87%라는 경이로운 정착률을 기록했다.
비결을 묻자 이지현씨는 답했다. “우리가 유경험자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귀농도 해봤고, 창업도 해봤어요. 당시 4년 차였으니 방금 겪은 일들이 얼마나 생생하겠어요.”
교육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비즈니스 스쿨’. 아이템 개발부터 재무제표 작성, 사업계획서, 소비자 가격 책정까지,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바로 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짠, 지독할 정도로 실전 중심의 교육이었다. 이 스파르타식 과정에 참가자들은 밤마다 숙제를 하느라 잠을 설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프로그램 종료 직후 곧바로 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생존 근육’을 얻었다.
다른 하나는 ‘네트워크 프로그램’. 서울이 아닌 농촌에서는 농업 커뮤니티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마을 어르신과 청년 농업인을 멘토로 붙여 농사를 배우게 하고, 충북 권역 청년 창업자들을 모아 친구가 되게 했다. 자신이 입사할 때 신입이던 공무원들과도 안면을 터줬다.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행복했던 기억 하나’
괴산 두달 살기 프로그램이 지역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과 이를 지지해 줄 든든한 관계망을 만들어준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은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축제를 열고, 18명 가운데 일부는 농업인으로, 다수는 작가·디자이너로 지역에 자리 잡았다.
“괴산이라는 농촌에 비어 있는 것과,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의 교집합을 잘 찾으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도 벌고 지역민들의 응원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요즘 뭐하농은 청소년 교육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교육이 정보 전달이 아니어도 되겠다 싶었어요.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너무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가져가는 것, 그게 제 교육의 목적이에요. 나중에 힘들 때 ‘그때 그 농촌 밭에 누워 있던 거 좋았는데’를 떠올리면,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이죠.”
초등학생에겐 밭에서 함께 숨 쉬고 냄새 맡는 오감 프로그램을, 중학생에겐 공동체 교육을, 고등학생에겐 진로 교육을 한다. 광고 한번 한 적 없는데도 입소문만으로 한 해 4천 명 넘는 아이들이 다녀간다.

자연이 준 것, 그리고 ‘농라이프’라는 말
안빈낙도하려던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활동적인 꿈을 갖게 됐을까. 이지현씨는 “농업이 생각보다 가슴을 많이 울린다”고 했다.
자연은 기쁨의 순간을 끊임없이 나눠준다. 밭에서 너무 힘든 날, 흙내음을 품은 바람 한 줄기를 맞을 때처럼. 감자를 다 캔 어느 날이었다. 5천 평 밭 한가운데 박스에 걸터앉아 있는데, 흙바람이 불어왔다. “도시였으면 황사라고 안 맡으려 했을 그 흙바람이, 너무 좋은 거예요. 밭을 보는데 ‘나한테 또 이렇게 많이 줬네,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자연을 똑바로 마주할수록 좋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희망을 얻었다. 혼자 하면 사흘 걸릴 밭일이 둘이 붙으면 반나절에 끝난다. “함께 살아야 행복하구나, 혼자는 못 사는구나. 농촌에 와서 유독 많이 느꼈어요.”
봄비가 너무 많이 와 농사를 망칠까 걱정하면, 평생 농사를 본 후계농 친구가 말했다. “봄 농사가 망하면 가을 농사는 무조건 잘 돼요. 1년 다 잘 되는 건 로또고요, 망한 것 같아도 어떻게든 살아져요.” 눈앞의 실패에 아등바등하는 도시와 달리, 흐름을 보며 사는 유연한 마음을 배웠다.
이 모든 경험이 쌓이면서, 이지현씨는 ‘농(農)라이프'라는 말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농사를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전통적인 생산 활동에서 확장해 자연과의 스킨십을 통해 삶의 중심을 잡고 “우리가 어떻게 함께 즐겁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다. “10년 동안 농촌의 삶을 사랑한 사람의 사랑 고백 같은 거예요. 너무 힘든 노동의 현장인데, 왜 자꾸 행복하지, 왜 이렇게 마음이 개운하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괴산에서 전국으로, 다시 세계로
시선은 이제 괴산을 넘어 전국으로, 다시 세계로 향한다. 이지현씨는 3년 전 전국의 농촌 활동가들을 모아 ‘농개더링’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농사를 지으며 다른 것도 하는, ‘농업인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한’ 친구들이 농(農)으로 모인다는 뜻이다. 제주에서까지 올라와 한 번에 80여 명이 모이기도 한다.
목적은 분명하다. 네트워크, 그리고 포럼. “현장에서 농촌이 변하는 걸 아무도 아카이빙하지 않는 게 문제예요. 연구자들은 자기 이론에 맞는 사례만 찾을 뿐, 현장의 실제 속도와 현상은 이해를 못 해요. 정책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큰 거죠.”
그래서 연구원 출신 농업인들이 모여 연구회를 만들었다. 한국 농촌의 이야기를 직접 학문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그리고 이 일을 한국 안에만 가두지 않기로 했다. 세계유기농연맹(IFOAM) 같은 국제 무대에서 만난 또래 청년들의 고민은 유럽이든 일본이든 대만이든 놀랍도록 똑같았다. “농업이 이제 ‘농라이프’로 변화하는 거고, 그럼 이 농라이프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하는 거죠.”

“한국에 먼저 와봐야 확인할 수 있다”
그 결실이 오는 9월 10~12일 2박 3일간 열리는 국제 포럼이다. 18개국에서 해외 참가자 50여 명이 찾아오고, 국내 참가자까지 더하면 교수·활동가·정책 관계자 3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각 나라의 사례를 나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행정안전부가 후원하는 이번 포럼에서는 한국형 농촌 커뮤니티가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또 이를 뒷받침하려면 정책이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를 함께 논의한다.
이지현씨의 포부는 당차다. “일본에 견학 가는 게 아니라, 농촌 전환의 흐름은 한국에 먼저 와봐야 확인할 수 있다는 걸 국제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우리나라처럼 청년 주도로, 전국 규모로 네트워크가 되는 나라가 많지 않거든요.”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삶을 찾아 도시를 떠났던 청년 부부는, 10년 뒤 세계가 한국 농촌을 보러 오게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자연이 매일 사소한 기쁨을 나눠준 것처럼, 이제 그가 더 많은 청년과 아이들에게 그 기쁨을 나눠주고 싶어서다.
“농사짓는 현장을 가보면, 거칠긴 해도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그게 좋은 청년들이 자꾸 또 찾아오나 봐요.”
괴산의 잔디밭에는, 오늘도 바람을 따라 민트 향기가 툭, 툭 올라온다.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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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646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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