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을 뒤흔든 수제버거, 출발은 폐 마늘 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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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을 뒤흔든 수제버거, 출발은 폐 마늘 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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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24) 경북 왜관 므므흐스 버거
서울 주변 어느 핫플레이스의 브런치 카페를 옮겨 놓은 듯하다. 통창 안쪽으로는 반짝이는 햄버거 번과 높이 쌓인 패티, 접시에 담긴 설봉감자튀김이 분주히 오간다. 주말이면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줄이 가게 뒤편까지 꼬리를 문다.
그런데 손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면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젊은 커플 사이로 임신부와 유모차를 미는 부부, 지팡이를 짚은 80대 어르신이 한 테이블에 앉아 수제버거를 먹는 장면이 낯설고도 정겹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수제버거 가게 ‘므므흐스(MMHS) 버거 왜관’의 일상이다. 발길 한 번 옮겨 볼 일 없던 ‘왜관’이라는 지명을 젊은 세대의 머릿속 지도에 또렷이 찍어 준 가게다.

경산에서 차를 몰고 50분을 달려왔다는 이현(30)씨는 “솔직히 내 머릿속 지도에 왜관이라는 동네는 없었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조금만 더 가도 바다나 유명 관광지에 닿는데, 여기만큼은 이 햄버거 하나로 올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햄버거를 “매일 먹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한다”는 그는 “수제버거 하면 떠오르는 기름지고 무거운 맛이 아니라 가볍게 먹어도 속이 편하다”고 므므흐스 버거의 장점을 소개했다. 윤기 도는 번, 높이 쌓인 패티, 사이로 정갈하게 꽂힌 크리스피아노까지 “해외 어딘가에서 본 듯한 비주얼”이라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마늘 공장·농기계 창고가 햄버거 ‘성지’로
한 해 8만명이 찾는 ‘성지’가 됐지만, 이 공간의 시작은 문 닫은 마늘 공장이자, 농기계 창고였다.
문화공연 기획자 출신인 배민화(42) 대표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귀국해 서울에서 전시·공연 기획 일을 했다. 그러다 여러 차례 유산을 겪었고, 2017년에는 고속도로 5중 추돌 사고로 임신 6개월 된 아이를 잃었다. 남편 구건호씨의 고향인 칠곡군 왜관읍로 내려온 건 그 직후였다. “더 내려갈 바닥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바닥 밑 지하를 뚫고 또 내려가는 느낌이었어요.”

2018년, 돈도 사업 아이템도 뚜렷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벚꽃이 유난히 곱게 피던 매원리 길을 걷다 발견한 곳이 지금의 므므흐스 자리였다. 트럭과 트랙터가 드나들던 폐 공장, 흙바닥 위로 농기구와 비닐하우스가 뒤엉켜 있던 창고. 그곳을 보고 배 대표는 “여기서 어린이 미술관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건물주였던 당시 이장 이효석(69)씨가 “젊은 사람들이 뭘 해 보겠다는데 한번 해 보라”며 헐값에 공간을 내준 것이 출발점이었다.
폭염 경보가 내리던 그해 여름,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몸을 챙겨야 할 그를 대신해 남편은 홀로 사다리에 올라 페인트칠을 했고, 시골 흙 마당이던 앞마당을 가꾸었다. “음식 몇 개 팔아 프라이팬을 사고, 또 팔아서 제빙기를 사고.” 그의 말처럼 초창기엔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며 한 푼 두 푼 모아 장비를 들여오는 식으로 공간을 키워 갔다.


‘모든 날 매 순간 행복한 사람들’
므므흐스라는 독특한 이름은 ‘모든 날 매 순간 행복한 사람들’의 초성에서 따왔다. “우울의 바닥을 지나면서, 그저 하루 한 순간이라도 웃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이름의 출발이었어요.” 배 대표가 말했다.

가게 한쪽에는 손님들이 ’ㅁㅁㅎㅅ’라는 키워드로 네 줄짜리 글을 지을 수 있는 메모지가 놓여 있다. ‘매일매일 회사 가기 싫다’는 하소연부터 ‘세계로 뻗어 가라 므므흐스’ 같은 응원까지, 손님들의 글짓기를 아카이빙해 전시할 계획이다. “햄버거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기억을 남기는 동네 미술관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어요.”(배민화 대표)
므므흐스가 자리 잡은 매원리는 안동 하회, 경주 양동과 함께 영남 3대 반촌으로 불린다. 100년이 넘은 고택과 국가등록문화재 한옥이 골목마다 이어진다. 주말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손님들을 위해 배 대표는 작은 장치를 마련했다. 매원 한옥마을을 산책하고 인증샷을 찍어 오면 음료를 무료로 주는 이벤트다. ‘줄 서서 지루하게 기다리는 손님’을 ‘마을을 한 바퀴 더 걷는 손님’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손님들은 한옥 골목을 거닐며 사진을 남긴 뒤 가게로 돌아와 햄버거를 받아 드는 동선을 자연스럽게 즐기게 됐다. ‘한옥 골목 둘러보고 햄버거 먹는 코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조용하던 마을에 젊은 발길이 이어졌다.
잘 가꾼 한옥집 마당에서 만난 마을 주민 이수옥(79)씨도 자랑이 늘어졌다. “마을 오는 손님 70%는 햄버거 먹으러 와요. 바쁠 땐 번호표만 끊어 놓고 한 바퀴 돌다 다시 가게로 들어가고, 아주 난리라니까. 칠곡군에 이름난 건 찔레꽃이랑 이 햄버거집이라고.” 시골 풍경에 스며든 수제버거집의 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뇨 ‘프리’…안심 메뉴가 된 햄버거
손님 연령층은 “임신부부터 지팡이 짚은 80대 어르신까지” 폭이 넓다. 어느 날부터 임신부 손님이 부쩍 눈에 띄었다. 당뇨 환우 카페에 “므므흐스 버거를 먹고 혈당을 재 봤더니 수치가 잘 오르지 않더라”는 후기가 올라온 덕분이었다. 당뇨 환자와 보호자, 임신부들이 ‘먹어도 되는 햄버거’를 찾아 왜관까지 원정을 오고 있었다. “속이 편하다”는 평이 이어지며 므므흐스는 어느새 ‘안심 메뉴’로 자리 잡았다.
어르신 단골이 늘면서 작은 배려도 챙겼다. 외래어 일색인 메뉴가 낯선 분들을 위해, ‘할라피뇨’ 옆에 ‘매콤한 서양고추’라는 한글풀이를 나란히 적었다. ‘야채없이 고기만 두 장’처럼 직관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지갑에 쏙 들어가는 명함 크기 카드에 메뉴를 인쇄해 나눠드렸다. 어르신들이 카운터에 그 카드를 내밀며 “이거 해주세요”라고 한마디로 주문하도록 설계했다. 또 “당뇨·고혈압이 있으면 소스 적게, 야채 많이”라고 주문하도록 안내했다.

농번기엔 햄버거가 ‘새참’ 노릇도 한다. 마을 일손이 한창 바쁠 때면 가게에서 포장한 햄버거를 한꺼번에 열 개씩 광주리에 담아 논밭으로 나르는 풍경이 흔해졌다. 논두렁에 둘러앉은 농민들이 막걸리와 주먹밥 대신 수제버거를 그렇게 나눠 먹는다.
인근 미군 부대 병사들도 빼놓을 수 없는 단골이다. 햄버거를 거의 주식처럼 먹는 그들은 처음엔 야채와 소스를 모두 빼 달라고 주문해 당황하게 했다. “야채가 든 버거는 설렁탕을 차게 먹는 느낌”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사정을 짐작했다. 아예 그들 입맛에 맞춘 메뉴를 따로 개발했다. “야채 하나 안 들어가고 고기 패티 두 장만 넣은 ‘아미 버거’를 새로 만들었어요.” 병사들은 함께 택시를 타고 와 차를 대기시켜 둔 채 햄버거를 먹고 부대로 돌아간다. 새로 부임한 병사들에게는 “꼭 먹어 봐야 할 음식”으로 인수인계가 이뤄질 만큼, 아미 버거는 미군 부대 안에서도 통하는 메뉴가 됐다.

건강한 재료, 그러나 느리지 않은 패스트푸드
나이도, 국적도 다른 손님들이 한 가게로 모이는 데에는 ‘재료에 대한 고집’이 있다. 므므흐스는 ‘햄버거는 건강하지 않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흑마늘 진액을 넣은 번, 국내산 설봉감자로 튀겨 낸 감자튀김, 지역마다 다른 식재료로 만든 토핑과 소스를 앞세워 ‘소화가 잘되는 버거’를 지향한다. 블로그 후기에는 “덜 느끼한데 패티 두께와 양파의 아삭함, 토마토의 신선함이 살아 있다”, “감자튀김까지 건강하게 해 보겠다는 고집이 느껴진다”는 평이 적지 않다.


햄버거는 실제로 지역 농산물에 깊이 기대고 있다. 경남 밀양 흑마늘 진액으로 빵을, 육류소화제인 능이버섯으로 패티를 만든다. 전남 화순 토마토와 경북 성주 양파를 넣고, 경주 상주에서 재배한 설봉감자를 튀김용으로 사용한다. 매운 고추를 더해 한국적인 맛을 살린 ‘땡초페스토’ 소스, 칠곡 미나리로 만든 ‘루미나리 솔트’와 ‘크레크레 소스’까지 자체 개발해 햄버거와 사이드 메뉴에 녹여 냈다.
이런 방식이 동네 안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마을 주민 이효석씨는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꾸준히 쓰려 하고, 가게만 잘되는 게 아니라 동네랑 같이 크려고 애를 많이 쓴다”며 “가게도 좋고 동네도 좋아야 서로 좋은 법”이라고 말했다.

“괜찮은 회사 다닌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
동네와 함께 크겠다는 고집은 가게 안쪽으로도 향한다. 배민화 대표는 로컬 크리에이터 사이에선 꽤 알려진 이름이다.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로컬페스타’에서 ‘올해의 로컬 크리에이터’ 최우수팀으로 선정됐고, 칠곡 왜관을 ‘햄버거의 도시’로 만든 사례로 각종 강의와 컨설팅 요청이 이어진다.
이 작은 시골 햄버거 가게의 성공 원동력을 묻자, 배 대표는 주저 없이 “우리 직원들이 ‘회사’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명절에 친구들 만나면 ‘요즘 뭐 해?’ 물어보잖아요. 우리 직원들이 ‘므므흐스 다녀’ 했을 때, ‘햄버거집 알바 해?’가 아니라 ‘괜찮은 회사 다닌다’는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 성장해야 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실험을 멈출 수가 없어요.” 그렇게 조금씩 키운 므므흐스는 지금 17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는 ‘회사’가 됐다.


실험은 이제 마을을 넘어 해외로도 뻗어 나간다. 배 대표는 지난 4월24~2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케이푸드·전통주·로컬 브랜드 행사에 참여해 토종감자 스낵과 발효 음료 등 자체 개발 제품을 선보였고, 현지 바이어들의 반응을 살피며 본격적인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햄버거 하나로 한 해 10만명이 찾는 시골 마을이 된 매원리. 그 중심에는 “우리 동네에도 좋은 게 있어야 한다”는 주민들의 자부심과 “함께 성장하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배민화 대표의 고집스러운 실험이 겹쳐진다. 오늘도 므므흐스 창밖 논과 밭 위로 저녁 햇살이 길게 내려앉는다.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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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58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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