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깨끗한 부산 구도심의 ‘알쓸신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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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보다 깨끗한 부산 구도심의 ‘알쓸신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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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거주하는 김진욱(33)씨는 2층 단독주택에서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살면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적잖은 불편을 겪었다. 냄새 탓에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해야 했고, 3~4일에 한 번씩 버리는 일도 번거로웠다.
그러던 중 김씨는 동래구청 누리집에서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 구입비 지원 공고를 접했다. 감량기 구입 후 영수증을 제출하면 최대 4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조금 지원을 신청해 대상자로 선정된 김씨는 2024년 5월, 4인 가족이 사용하기 적합한 대용량 미생물 처리기(80만8천원)를 샀다.
변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넣으면 24시간 이내에 분쇄·건조되어 흙으로 변했다. 쓰레기를 수시로 처리하니까 벌레와 냄새 문제가 말끔히 해결됐다. 다만, 김씨는 “음식물을 처리할 때 양념을 씻어내야 하고, 주기적으로 흙을 골라내는 게 좀 귀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입비를 구청에서 지원받은 데다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가족은 모두 만족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 생활을 바꾸다
동래구는 음식물 폐기물의 약 80%가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해 2024년 부산시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기 지원사업’을 도입했다.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기란 음식물을 가열, 건조 또는 발효해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하거나 줄이는 기기를 말한다. 동래구는 가구당 감량기 구입 금액의 50%, 최대 4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
2024년에는 200가구가 신청해 81가구를 선정했고, 총 3천만원의 감량기 구입비를 보조했다. 감량기 사용자들의 음식물 쓰레기 폐출량은 50% 정도 감소한 것으로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2025년에도 75가구를 선정했다. 신청자가 416명으로 2024년(200명)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 경쟁률이 5.5대1에 달했다. 가구원 수, 동래구 거주 기간 등을 점수로 매겨 지원대상 가구를 선정했다.
동래구의 정책은 부산시 전체로 퍼지고 있다. 부산시가 주민 제안을 받아들여 2025년 하반기부터 16개 구·군에 음식물 폐기물 감량기 지원 예산을 배정하기로 했다.

동래구는 주택가가 밀집한 구도심이지만 전국에서 손꼽히는 청결 동네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자연하천인 온천천과 그 주변 골목을 걸어보니, 일본을 연상케 할 만큼 거리와 하천변이 깨끗했다. 특히 담배꽁초가 쌓이기 쉬운 빗물받이조차 쓰레기 하나 없이 정돈돼 있었다. 누군가가 쓸어놓은 듯 쓰레기가 한쪽에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처럼 깨끗한 환경의 비결은 주민 참여와 행정이 어우러진 환경정책과 청소문화에 있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을 ‘동래구민 청소하는 날’로 정하고, 주민과 구청 직원 100여명이 함께 골목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쓰레기 수거, 잡초 제거, 빗물받이 청소 등 환경 정비 활동을 해마다 10회씩, 3년간 30회 운영해왔다.
또 주민들이 집 앞이나 가게 주변을 청소한 뒤 사진을 올리고 봉사 점수를 받는 ‘알쓸신줍(알아서 쓸고 신나게 줍자)’ 캠페인, 깨끗하지 않은 구역을 책임지고 청소하는 ‘클린 구역 지킴이’ 등도 있다. 동네 소공원 등 청소 사각지대에 꽃밭을 조성하고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지역에 대한 애착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청결 동네의 숨은 주인공 만나보니

동래구 온천1동에서 ‘알쓸신줍’ 캠페인에 참여하는 주민 김균자(69)씨와 정수민(66)씨를 만났다. 김씨는 43년째, 정씨는 25년째 이 동네에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몇 년 사이 상가가 비는 곳이 많아지면서 동네가 지저분해졌다”며 “길거리에 잡초가 무성해지니까 낙후된 것으로 보여서 청소에 나섰다”고 말했다. 다음은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내 집도 아닌 동네 청소를 왜 하나.
정수민: “동네가 지저분하니까요. 처음에는 땀을 흘리며 청소하는 모습을 남들이 볼까 봐 부끄러워서 새벽에 마스크를 쓰고 몰래 했어요. 점차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청소를 하게 되더라고요.”
김균자: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로 셋째주 수요일에는 다함께 담배꽁초 줍고, 잡초 뽑고, 무단투기 쓰레기 있으면 신고를 합니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밤이나 새벽 시간에 호미를 들고 운동 삼아 나가서 혼자 청소하고요. 비 오고 난 뒤면 아주 좋지요. 주변에서 알아보지 않도록 살며시 가로수 밑에서 쪼그리고 앉습니다.”
―청소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
정수민: “깨끗해진 동네를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이제는 청소 거리가 눈에 보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김균자: “잡초나 쓰레기가 없어지면 동네가 달라 보이고, 자부심이 생깁니다. 뿌듯함이 커요. 남들이 왜 하냐고 물어도, 내 눈에 보이니까 그냥 하게 돼요.”
―청소가 동네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정수민: “예전에는 각자 자기 집 앞만 쓸었는데, 이제는 다 같이 협력해서 동네 전체가 깨끗해졌어요. 무단투기를 제보하거나 잡초를 뽑아모아놓고 동사무소로 연락하면 금방 달려옵니다. 협업이 아주 잘 되는 동네예요.”
김균자: “구청에서는 대청소 때 배수로, 빗물받이 청소까지 하는데 그 덕분에 2024년에 부산에 큰비가 왔어도 동래구는 피해가 없었어요. 다른 구와 비교해도 우리 동네가 더 깨끗하고요.”

온천1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주무관 옥종석씨는 “주민의 무단 투기 신고가 들어오면 동 차원에서 치울 수 있는 것은 직접 현장에 나가 처리하고, 양이 많을 경우 구청에 보고해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 주민센터에는 청소용 트럭과 빗자루, 집게, 공공용 마대 등 청소 장비가 구비돼 있다. 그는 동네 청소를 하면서 빗물받이도 점검해 쓰레기가 발견되면 구청에 즉시 보고한다.
빗물받이 청소, 홍수 피해 최소화 핵심
실제로 빗물받이 청소가 홍수 피해 예방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빗물받이는 도로와 주택가 등에 내린 빗물을 신속하게 하수관으로 흘려보내 침수를 막는 수방시설이다. 하지만 담배꽁초, 낙엽, 쓰레기 등으로 막히면 배수 기능이 저하되어 집중호우 때 도로와 주택가가 침수될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빗물받이 입구의 3분의 1만 막혀도 도로 침수 수위가 2배로 증가한다는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실험 연구 결과가 있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가 컸던 사례 대부분도 빗물받이와 하수관의 막힘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주택가가 많은 동래구는 빗물받이 관리가 특히 중요한 지역이다. 매년 장마철을 앞두고 빗물받이 청소를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2024년 부산에 3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때도 동래구는 다른 구에 비해 침수 피해가 훨씬 적었다. 과거 상습 침수지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빗물받이 청소와 관리가 침수 피해를 현저히 줄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청소의 효과가 분명해지자 주민 참여가 더욱 활발해졌다. 부산 동래구 사직3동에서 ‘클린 구역 지킴이’로 활동하는 주민 변명자(67)씨는 통장들과 더불어 새마을지도자, 부녀회 등 각종 단체가 마을을 4~5구역으로 나눠 정기적으로 청소한다고 했다. 변씨가 맡은 대선주조 공장(현 물류창고) 주변 주택가는, 주택지 특성상 쓰레기 배출 요일을 잘못 알아 대문 앞에 쓰레기가 쌓이고, 일주일 넘게 방치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쓰레기 종량제 봉투 도입 이후에는 집 주변을 청소하고도 종량제 봉투를 사야만 쓰레기를 버릴 수 있어, 청소를 등한시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변씨는 “내 구역이 생기니까 책임지고 관리하게 된다. 덕분에 예전보다 동네가 확실히 깨끗해졌다”고 말했다.

다회용 컵 사용, ‘루틴’으로 자리잡다
친환경 정책의 성공 모델로 ‘다회용 컵 사용 문화 정착’도 빠질 수 없다. 동래구청은 2022년 3월부터 청사 내 일회용 컵 반입을 전면 금지하고, 그린업의 다회용 컵 시스템(E컵)을 도입했다. 직원과 방문객은 청사 인근 카페에서 그린업 앱과 QR코드를 통해 E컵을 이용한다. 음료를 주문할 때 컵을 빌리고, 음료를 다 마신 뒤 구청 내 반납기에 넣으면 보증금이 자동 반환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환경부의 탄소중립포인트 제도와 연계돼, E컵 이용자는 1회당 300원, 연간 최대 7만원을 받는다. E컵은 200회까지 사용 후 100% 재활용된다.
E컵 도입 당시 청사 내에서는 하루 평균 500개, 연간 13만개의 일회용 컵이 사용되고 있었다. 지금은 일회용 컵 사용이 거의 사라졌고, 점심시간이면 E컵을 들고 청사로 돌아오는 직원이 대다수다. 오민경 그린업 대표는 “다른 기관은 일회용 컵과 혼합 사용이 많지만, 동래구청은 E컵 사용이 문화와 루틴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동래구의 사례는 한 가족의 쓰레기 감량, 한 번의 동네 청소, 한 잔의 다회용 컵 사용이 모여 지역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민 참여와 행정이 손을 맞잡으면, 친환경 정책은 일회성 캠페인을 넘어 일상과 문화로 자리 잡는다. 달라진 일상이 지역의 홍수 피해를 막고, 공동체의 자부심을 높이며,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친환경 도시’이라는 목표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동래구의 골목에서 체험했다.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글·사진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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