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쿠폰 대신 ‘마을온’…공무원 대신 ‘이웃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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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쿠폰 대신 ‘마을온’…공무원 대신 ‘이웃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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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22) 광주 광산구 송정1동 마을온과 1313 이웃살핌
광주 광산구 송정1동 골목에 있는 슈퍼마켓 ‘송정식자매 마트’ 입구에는 ‘마을온(ON) 송정1동 마을화폐 가맹점’이라는 파란색 스티커가 붙어 있다. 라면과 쌀, 때로는 평소 사치처럼 느껴졌던 과일을 바구니에 담은 동네 주민들이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라며 마을온 1만원권을 내놓는다고 이우홍(54) 사장은 말했다. 마을온은 송정1동 주민자치회가 만든 동 단위 마을 화폐다. 이 마트에는 한 달에 70~80명가량이 마을온을 들고 찾아오는데, 대부분이 형편이 넉넉지 않은 취약계층이다. 이 사장은 “큰돈은 아니지만 취약계층에게 마을온은 삶을 조금 넉넉하게 해주는 돈”이라고 했다.
송정1동 골목 안 통닭집 ‘바구니치킨’ 풍경도 비슷하다. 가족 단위 손님들이 외식하듯 치킨을 먹고 마을온 카드를 내민다. 한 달에 30만~40만원 정도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김명현(29) 사장은 “다른 동에서는 쓸 수 없으니 동네 가게에 힘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마을온 덕분에 처음 찾아온 동네 주민들이 치킨 맛을 보고 단골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주민이 설계한 동네 화폐, ‘마을온’
2025년 3월, 송정1동 마을 화폐 ‘마을온’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광산구에 구 차원의 지역화폐가 없던 시절, 송정1동 주민자치회는 “우리 동 골목에서만 쓰는 화폐”를 직접 설계했다. 마을온은 송정1동 안에 있는 ‘마을온 우리가게’로 지정된 45개 골목 점포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17개 기관·사회단체와 함께 ‘마을온 골목경제 주민협의체’를 꾸리고 펀딩 모금에 나섰고, 주민 137명이 1571만 원을 기부해 1만원권 쿠폰형 마을 화폐를 찍어냈다.
“마을온 화폐는 우리 마을 가게를 살리는 데 쓰이고, 나는 기부금 공제를 받으니까 기부하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공제받을 돈이면 우리 동네를 위해 쓰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마을온 펀딩에 참여한 주민 심정원(63)씨가 말했다.
마을온을 유통시키는 방식도 마을다웠다. 주민들이 동네 가게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5만원 이상 소비하고 영수증을 모아 응모하면, 50명을 추첨해 마을온 1만원권을 지급하는 소비 진작 이벤트를 연 것이다. “마을온을 들고 동네 가게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또 당첨됐네’하면서 웃고, 어느 날 얼굴이 안 좋아 보이면 ‘무슨 일 있으세요?’ 하고 묻게 되거든요.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는 이웃이 되는 거예요.” 심씨는 마을 화폐 한장이 사람 사이의 거리까지 바꾸고 있다고 했다.

주민이 직접 고치는 동네 실험실
송정1동 주민자치회는 2021년부터 마을 문제를 주민 스스로 논의하는 공론장을 꾸준히 열며, 눈에 보이는 골목의 불편부터 차근차근 손을 봐왔다. 좁은 골목길에 태양광 LED 가로등을 설치한 사업이 대표적이다. 주민들이 “밤에 너무 어두워 사람이 겨우 다니는 골목이 많다”는 문제를 의제로 올렸고,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기영철 주민자치회장은 “원도심이라 가로등이 안 들어오는 데가 많아서, 태양광 LED를 하나씩 달아보기로 했다. 한꺼번에 다 못 하니까 예산 범위 안에서 설치를 늘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부터 매주 금요일 아침 8시, 송정파출소 앞에서는 기후위기 피켓 캠페인이 열린다. 주민들은 종이 상자를 잘라 만든 손팻말에 ‘일회용품을 줄이자’, ‘페트병은 씻어서 버리자’ 같은 문구를 적어 들고 서고, 바로 옆에서는 쓰레기를 주우며 걷는 ‘줍깅’도 함께 진행한다. 동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매주 나와 이어가는 기후위기 캠페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캠페인에 꾸준히 참여해온 김아람(34)씨는 집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플라스틱은 헹궈서 버려야 재활용이 되잖아요. 예전엔 그냥 버렸는데, 캠페인 교육을 듣고 나서 제가 가족들에게 ‘라벨 떼고, 뚜껑 따로 빼서 씻어서 버려야 한다’고 알려줬거든요. 그랬더니 이제는 남편이 먼저 그렇게 실천해요. 저 하나에서 시작한 게 남편으로, 아이들로 우리 집 식구 전체로 번진 거죠.”

“동네에 돈∙사람이 도는 구조”
이런 공론장과 캠페인 경험이 쌓이면서, 주민들 사이에는 “골목경제도, 취약계층 문제도 우리가 먼저 얘기하고 해보자”는 정서가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마을온 화폐는 이러한 주민자치회의 축적된 경험 위에서 탄생했다. 주민들은 “저녁을 먹으러 갈 때, 웬만하면 동네 먹자골목으로 가자, 비싸도 차 몰고 멀리 가지 말고 동네에서 쓰자”는 공감대가 만들어지자 이를 구체적 행동으로 묶어낼 수 있는 마을 화폐가 움텄다.
“행정에서 설문조사나 여론조사 한 번 하면 스타벅스 같은 데서 쓰는 커피 쿠폰을 주는데, 그건 우리 동네 경제에는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마을온은 위에서 내려오는 쿠폰이 아니라, 발행액을 주민들이 펀딩으로 모아서 우리 동네 가게에서만 쓰게 만든 화폐예요. 결국 동네에서 돈이 돌고, 사람이 돌아야 마을이 성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영철 회장의 말이다.
걸어서 5분 안에 닿는 돌봄
마을온이 ‘동네에서 쓰는 돈’을 만들었다면, 2023년에 출범한 ‘1313 이웃살핌’은 ‘동네에서 돌보는 관계망’을 촘촘히 엮는 프로젝트다. 1313이라는 이름은 ‘이웃지기’ 1명이 위기가구 3세대를 살피고, 각 위기가구마다 이웃 단짝 3명을 붙여 함께 돌본다는 데서 나왔다. 송정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기영철 회장은 “한 명이 세 명을 살피고, 또 그 세 명이 다른 세 명을 살피는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자는 뜻”이라며 “1인 가구와 고령 가구가 늘면서 생긴 고립·은둔·고독사 위험을 주민 참여로 줄여보자고 만든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웃지기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광산함께돌봄학교’ 6강(총 12시간)의 실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웃 이해, 소통과 관계 형성 방법, 위기가구 관찰 포인트 등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교육함으로써 주민이 돌봄 주체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
송정1동은 원도심 단독주택 밀집 지역이라, 30~40년씩 살아온 주민이 많고 서로 얼굴을 아는 이웃이 많다. “어느 날 안 보이면 ‘왜 안 보이지?’ 걱정이 되는 그런 동네죠.” 이웃지기인 최영자(56)씨가 1313의 원칙이 ‘걸어서 5분 돌봄’인 이유를 설명했다. “멀리 있는 공무원이 아니라, 내 집에서 걸어서 5분 안에 갈 수 있는 이웃이 돌봐야 진짜 돌봄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웃지기단은 동네 구석구석에서 위기 이웃을 발굴하고, 그 집에서 걸어서 5분 안에 갈 수 있는 활동가를 매칭해 안부를 살피고 생활을 돕는다. 현재 송정1동에서는 23개 통을 10명의 이웃지기가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이웃지기들이 은둔형 주민을 발굴하려고 동네 동네 돌았어요. 슈퍼마켓에 가서도 ‘여기 혼자 사시는데 집 밖 출입을 잘 안 하시는 분 있냐’고 묻고, 주소는 있는데 이웃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집이면 직접 문을 두드렸죠.” 처음에는 문을 잘 열어주지 않지만 “여러 번 가서 두들기고, 얼굴을 자주 비추다 보면 나중에는 문도 열어준다”고 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돌봄 대상이다. “우리가 못 사는 사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만 돌보는 게 아니에요. 아무리 부유해도 지금 당장 집 안에 혼자 갇혀 있으면 그분도 우리의 돌봄 대상이에요. 배경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지금 환경을 보자는 거죠.” ‘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고립 상태’가 기준인 셈이다.
위기 이웃과 신뢰가 쌓이면, 이웃지기들은 요리교실 같은 프로그램에 초대해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런 방식으로 관계망을 조금씩 넓혀 갔다.“반찬은 우리가 갖다 줘도 되지만, 중요한 건 집 밖으로 나와서 이웃들과 어울리게 하는 거잖아요. 자주 얼굴을 보고 수다 떨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의 안부를 챙기게 되니까요.” 요리교실을 진행하는 최영자씨가 말했다.

0명이 된 고독사 고위험군
송정1동에서 시작된 1313 이웃지기 실험은 광산구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광산구는 송정1동 시범 사업을 거쳐 사회적 고립 고위험군이 많은 12개 동에서 1313 이웃살핌 사업을 추진했고, 이후 21개 전 동으로 확대했다. 동마다 10명 안팎의 이웃지기가 참여해 고립 가구를 발굴하고 안부 살핌, 정서 지원, 이웃단짝 연결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으로는 21개 동에서 143명의 이웃지기가 243명의 ‘살핌이웃’을 지원한 것으로 집계된다.
광산구가 2025년 ‘1313 이웃살핌’ 대상자 189명을 세 차례 조사한 결과, 3명이던 고독사 고위험군이 0명으로 줄고, 주 1회 이상 외출·소통 비율은 크게 늘어난 반면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은 뚜렷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영자씨도 변화를 실감한다. “처음 돌봄을 받던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이웃이랑 어울리면서 복지관도 다니고, 직장생활도 다시 시작했죠. 그러다 보면 우리 손에서는 조금씩 빠져나가요. 그러면 또 새로 발굴한 분들이 들어오고요. 그 순환이 제일 큰 성과예요.”

마을협동조합, 화폐와 돌봄을 잇다
송정1동 주민자치회는 마을온과 1313 이웃지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마을협동조합은 ‘마을 돌봄’과 ‘마을 관리’를 두 축으로 삼아 사업을 설계하고 있다. 마을 돌봄은 1313 이웃지기 사업과 연계해 요리 교실, 소모임, 안부 살핌 같은 주민 활동을 더 촘촘히 현장에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맡고, 마을 관리는 공원 관리, 가로 청소, 잡초 제거 같은 공공 관리 업무를 외부 용역이 아닌 동네 주민이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기인 13명으로 출발한 이 협동조합은 향후 노인 일자리, 노노케어, 신중년 일자리 수행기관 등록을 추진해 “하루 8시간 노동은 어렵지만 2~3시간씩이라도 일하고 싶은” 60대 이상 주민들에게 소소한 마을 일자리를 제공하려 한다. 송정1동 주민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마을이니까 가능한 일”이 이제는 한 동네를 넘어, 새로운 지역 복지·경제 모델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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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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