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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회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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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면 ‘용돈’, 모으니 ‘복지’… 마을 살리는 ‘햇빛소득’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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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1회 작성일 26-03-16 10:50

쪼개면 ‘용돈’, 모으니 ‘복지’… 마을 살리는 ‘햇빛소득’ 실험

작성일 26-03-16 조회수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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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메뉴는 닭볶음탕이에요.”

지난 9일 오전 11시50분께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 새마을식당 ‘우리는 한 식구!’에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줄을 서서 밥과 국, 반찬을 뜨는 손길이 분주해지자 김사인(74) 조리사가 말했다. “반찬이 겹치면 안 되니까, 매일 바꿔요. 그래도 고기는 하나 꼭 들어가죠.” ​마을식당 입구 쪽에 걸려 있는 메뉴판에는 한 달 치 식단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햇빛소득, 마을공동체를 살리다

시집온 뒤 4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살아온 심연화(71)씨는 마을식당이 생기기 전과 후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에는 밥을 세 끼 다 챙겨 먹지는 않았어요. 혼자 있으면 점심에 고구마 하나 쪄 먹고 그랬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에게 이제 점심시간은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집에 있으면 온종일 말할 사람이 없잖아요. 여기 오면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니까.”

홀로 사는 주민들에게 마을식당의 점심 한 끼는 식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24년 11월부터 구양리 마을에서는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점심을 무료로 나눠준다. 누구든 마을 주민이면 먹을 수 있다. 하루 평균 30여명이 찾아오고, 닭볶음탕 등 특별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더 붐빈다. “한번 왔던 분들이 꾸준히 오는 데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도 처음엔 안 왔는데, 지금 다 와요.” (김사인 조리사)

경기 양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 마을 공동자산 위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경기 양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 마을 공동자산 위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개인 배분 대신 마을 복지 기금 선택

이 넉넉한 밥상의 비밀은, 마을 곳곳에 있는 태양광 패널에 있다.

구양리는 70가구, 약 130명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전국의 주목을 받게 된 건 마을이 공동 소유한 태양광 발전소(구양리햇빛발전소) 덕분이다. 마을회관, 창고, 체육시설 등 마을 공유재산 6곳에 총 약 1㎿(998㎾)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해 구양리 마을은 월 평균 약 1000만원의 순수익을 올린다.

이 돈은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이 공동 관리하며, 마을 복지에 전액 쓴다. △마을식당 무료 급식 제공 △마을 행복버스(9인승) 운행 △탁구장과 그라운드골프장 설치 △청년회·부녀회·경로회 활동비 지원 △주민 여행과 문화 행사까지, 모두 ‘햇빛소득’으로 운영된다. ​

수익 배분 방식을 놓고, 처음에는 ‘농촌 기본소득’처럼 1인당 현금으로 나누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주영(60) 이장의 생각은 달랐다. 주민 130명에게 쪼개면 1인당 돌아가는 돈도 크지 않을뿐더러, 누구까지 포함할지를 두고 다투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는 이런 갈등의 씨앗을 애초에 피하기 위해, 햇빛소득은 개인 몫이 아니라 마을 복지로 쓰는 쪽이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마을이 진행한 사업을 기본소득처럼 개인으로 나눠버리면 주민들이 마을공동체에 애정을 갖고 발전시켜 갈 계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전주영 구양리 이장이 마을 사무실에서 마을 지도를 보며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마을 공동 자산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전주영 구양리 이장이 마을 사무실에서 마을 지도를 보며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마을 공동 자산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70가구 마을의 주민 주도 에너지 실험

구양리햇빛발전소의 시작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한국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인 최재관(58)씨가 고민의 불을 지폈다.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농어업비서관을 지낸 뒤 고향 여주로 내려온 최재관씨의 통찰은 이랬다. 탄소 중립 시대, 재생에너지의 70~80%를 태양광이 감당해야 하기에 이 태양광은 농촌으로 몰려올 수밖에 없다. 외부 자본이 들어와 농지를 잠식하면, 농민들은 생존 위협에 직면한다. 해법은 하나, 농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처음 계획은 마을의 각 가정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곧 벽에 부딪혔다. 20년 장기 계약이 필요하다고 하자 어르신들이 고개를 저었다. 고령화가 심각한 마을에서 20년 후를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전주영 이장이 대안을 떠올렸다. “동네 창고에 올리면 되겠다.” 개인이 아니라 마을 자산에 태양광을 설치한다는 아이디어로, 산업통상자원부를 설득했다. 결국 '햇빛두레발전소’ 시범사업 공모가 2021년 12월에 나왔다. 전국 10곳을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최종 선정된 곳은 구양리를 포함해 단 두 마을뿐이었다. 법과 제도의 벽이 높은 탓에 마을 대부분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구양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 9일 마을식당에서 둘러앉아 점심 메뉴로 나온 닭볶음탕을 함께 먹고 있다.
구양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 9일 마을식당에서 둘러앉아 점심 메뉴로 나온 닭볶음탕을 함께 먹고 있다.

담보 없는 마을, 돈을 빌리다

공모사업에 선정은 됐지만 진짜 고비는 그다음이었다. 사업비 16억7000만원. 원래 설계는 10% 자부담에 90%를 정책자금(연 1.75% 저리)으로 융자받는 구조였다. 그런데 은행이 대출을 거부했다. 지역 농협은 태양광 대출 자체를 취급하지 않았고, 1금융권도 담보 없이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을이라는 게 법인격이 없고, 마을 자산이라는 것이 담보 가치가 없는 거더라고요. 자산이 있어도 금융권에서는 절대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전주영 이장이 당시를 떠올렸다.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다. 10년 동안 월 300씩 연금성 저축을 들어야 된다는 조건을 달고, 10억 2000만원(연 1.75%)을 광주은행에서 받았다. 나머지 4억 2000만원은 신협의 태양광 전문 대출(연 5%, 경기도 이자 차액 지원으로 실질 3%)로 충당했다. 자부담도 당초 10%에서 더 늘려야 했다.

선례가 없어서 모든 과정이 힘겨웠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전주영 이장이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햇빛소득마을’ 사업에서는 태양광 시설과 그 수익을 담보로 하는 수익권 담보대출·동산 담보대출 방식을 도입해, 별도의 부동산 담보 없이도 마을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양리가 겪은 고생이 뒤따라 올 마을들의 길을 미리 닦아준 셈이다.

1㎿ 태양광 발전으로 월 1천만원 수익

​2024년 1~4월 햇빛발전소를 순차적으로 완공하고, 5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마을은 ‘수익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돈을 쪼개기보다는, 모아서 함께 누리는 편이 공동체를 살린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사무장을 뽑고 마을 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을식당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원래 구양리에는 경로회에서 농한기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식사를 함께하던 전통이 있었다. 이를 확대해 어르신뿐 아니라 전 주민이 주 6일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바꿨다. 농번기에 부부가 함께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밥을 차리는 수고도, 마을식당 덕분에 한결 덜어졌다. 토요일까지 운영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평일에는 못 오는 직장인들이 토요일 날이라도 와서 같이 점심을 먹어야 마을 공동체를 느끼지요.” 전주영 이장의 설명이다.

구양리 새마을식당 ‘우리는 한 식구!’ 간판.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구양리 새마을식당 ‘우리는 한 식구!’ 간판.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마을 무료 버스인 ‘구양리 행복버스’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마을 무료 버스인 ‘구양리 행복버스’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주6일 무료 급식·마을버스 상시 운행

햇빛소득은 마을에 예상 밖의 변화를 가져왔다.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주민들 사이 유대감이 한층 깊어졌다. 특히 도시로 떠난 자녀들의 반응이 뜨겁다. 매일 부모의 식사를 마을이 챙기고, 무슨 일이 생기면 대신 연락할 마을 사람(사무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해 한다. 명절에 내려올 때면 태양광 시설을 둘러보고, 언론 보도를 챙겨보며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키운다. “은퇴하면 마을로 돌아와야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실제로 내려오는 사람도 있고요.” (전주영 이장)

태양광에 대한 인식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설치 전에는 전자파, 환경오염, 폐 패널 처리 비용 같은 루머가 팽배했지만, 지금은 지붕 위 3㎾짜리 소규모 태양광까지 26가구가 설치했다. 전기요금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등 혜택을 체감하자, 태양광을 혐오시설로 보는 시선이 사라졌다.

수익 운영의 투명성은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됐다. 마을 임원을 15명(사무장 포함 16명)이나 두어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 또 매월 임원회의를 열어 구양리햇빛발전소 수입·지출 내용을 빠짐없이 공개한다. 돈이 생기면 으레 다툼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런 투명한 공유가 갈등의 싹을 미리 잘라냈다.

2025년 10월19일, 가을맞이 마을 주민 단합 여행에 나선 구양리 주민들이 제천 청풍명월 일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2025년 10월19일, 가을맞이 마을 주민 단합 여행에 나선 구양리 주민들이 제천 청풍명월 일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구양리 마을이 운영하는 그라운드 골프장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구양리 마을이 운영하는 그라운드 골프장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구양리 마을이 운영하는 하우스 탁구장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구양리 마을이 운영하는 하우스 탁구장 모습.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 제공

소멸 위기 새 대안…2500곳으로 확산

​정부는 구양리햇빛발전소를 모범 사례로 삼아, 올해 500곳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전국에 햇빛소득마을 2500곳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난해 8월 구양리를 찾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촌 주민 모두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통한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시, 화성시를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잇따라 견학을 오며, 구양리는 이미 ‘선진지’가 됐다.

구양리의 비전도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골 어르신들에게 겨울 난방비가 가장 큰 부담”이라는 인식 아래, 마을은 가정용 태양광을 3㎾에서 30㎾까지 늘리고 전기보일러와 저장장치를 결합해 ‘난방비 걱정 없는 마을’을 꿈꾼다.

더 큰 그림도 그린다. 마을 옆을 지나는 중부내륙고속도로 방음벽과 비축농지, 농수로 같은 공유지에 태양광을 추가로 설치해 발전 용량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그렇게 쓰고 남는 전기를 마을 단위로 모아 팔고, 저장장치까지 갖추면 에너지 ‘자급자족’ 마을도 먼 얘기가 아니다. 난방비 걱정이 없고,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이웃과 어울리는 농촌마을이 된다면 떠날 이유는 사라지고 오히려 사람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햇빛이 차린 한 끼 밥상이 소멸 위기 농촌마을의 희망 불씨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글·사진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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