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마을을 깨우다…소공연장의 예술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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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마을을 깨우다…소공연장의 예술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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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바드 챔버하우스 알프홀’ 공연에서 피아노의 첫 음이 울리던 순간을 관객 최성흠(64)씨는 잊지 못한다. “큰 공연장에서는 멀리서 공명되는 소리를 듣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소리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기분이었죠. 소름이 돋았어요.”
바드 챔버하우스 상주 음악가인 피아니스트 조영훈(39)씨도 그날을 기억한다. 70여명의 관객이 가득 찬 공간이었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에서조차 숨소리를 죽이던 관객들의 눈빛과 숨결이 너무나 생생하다.

예술 소외 지역에서 피어난 꿈
대전에서 차로 30분, 서울에서는 2시간을 달려야 닿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 2021년 소공연장 ‘바드 카페 챔버홀’에 이어 2025년 클래식 전문 연주홀 ‘바드 챔버하우스 알프홀’이 문을 열었다. 클래식 공연장을 만든 사람은 지휘자 조연호(46)씨다.
헝가리 리스트 음악원에서 학사를, 미국 뉴욕주 바드컬리지 음악원(바드 콘서버토리)에서 석사를 밟은 그는, 2020년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파도에 밀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처가가 있는 유구읍을 오가다 클래식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지역 주민들을 그는 만났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악기를 접할 기회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 지휘자를 ‘조력자(Helper)’라고 생각하는 그는, 무대 위에서 단원들이 최고의 소리를 내도록 돕듯, 무대 밖에서도 사람들이 예술의 가치를 누릴 수 있게 돕는 것이 지휘자의 영역이라 믿었다.
미국 유학 시절 경험했던 바드 콘서버토리를 떠올렸다. 뉴욕 맨해튼에서 약 140㎞ 떨어진 허드슨 강 주변 전원 캠퍼스에 있는 바드 콘서버토리에서는 매년 여름,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모이는 ‘바드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 1990년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매해 한 명의 작곡가를 정해 그 인물의 삶과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데, 공연과 더불어 강연·패널 토론·학술행사를 함께 열고, 작곡가를 둘러싼 문학·철학·정치·미술의 맥락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지역 주민들이 격의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유구읍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연호씨는 생각했다.

카페에서 시작된 작은 음악회
농촌 마을에서 정착하기로 결심한 그는 행동에 나섰다. 2021년 유구 전통시장 옆의 낡은 연탄가게 건물을 임대해 카페로 리모델링하고 ‘바드 카페 챔버홀’을 열었다. ‘바드’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바드 콘서버토리에 대한 오마주다. 둘째, 본래 의미인 음유시인이다. 방랑하는 예술가들이 잠시 머물며 자유롭게 음악을 펼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2021년 12월 20평 남짓한 ‘바드 카페 챔버홀’에서 상주 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45)씨가 첫 연주회를 열었다. “그래도 관객이 한두 명은 있겠지”라는 소박한 마음이었는데,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당일 예매가 몰리면서 공연을 두 차례로 늘려 진행해야 했다. 전통시장에서 울려 퍼진 현악기의 선율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처음 마주하는 ‘감동’이 됐다.
관객과의 거리가 1m도 떨어지지 않은 작은 카페에서 연주하면서,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씨도 대공연장에서 마주한 적 없는 관객의 에너지를 경험했다. “관객 한 분 한 분과 인간적인 연결이 되는 느낌을 받아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 온기로 가득 찼어요.”(김민희씨)
몇 차례 성공적인 연주회를 거치면서 조연호씨는 더 큰 꿈을 품었다. ‘바드 카페 챔버홀’에서 도보로 10분 떨어진 곳에 클래식 전문 연주홀 ‘바드 챔버하우스 알프홀’을 지은 것이다. ‘알프홀(ALPH Hall)’이라는 이름은 우연히 찾아왔다. 책을 읽다가 메모한 네 단어 ‘Arts(예술)’ ‘Literature(문학)’ ‘Philosophy(철학)’ ‘History(역사)’의 첫 글자를 따보니 ‘ALPH(알프)’가 됐다. 네 단어는 조연호씨가 바드 콘서버토리에서 받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과 맞닿아 있다. 그곳의 교수들은 음악가이면서도 예일대 철학과, 하버드 역사학과를 나온 이들이 많았다. “음악과 인문학이 함께하는 교육 방식이 참 신선했어요. 그 경험이 바드 챔버하우스를 음악뿐만 아니라 인문학, 철학, 문학, 역사를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꿈의 출발점이 됐습니다.”(조연호씨)

소리 순환을 위한 치밀한 설계
클래식 전문 연주홀인 만큼 음향 설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공연장의 크기,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 그리고 독주회부터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치와 울림을 고민했다.” (조연호씨) 그리고 지붕의 각도에서 답을 찾았다. 프랑스 현대 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가장 이상적인 연주홀의 지붕 각도를 45도라고 말했다. 그래서 연주홀의 지붕을 최대한 경사지게 설계하고, 천장 높이를 7m로 만들어 소리와 울림이 순환하도록 설계했다.
또한 음색의 따스함을 만들 때는 현악기를 떠올렸다. “활이 아무리 좋아도 현의 떨림을 악기의 몸통이 뒷받침해야 하듯, 챔버하우스 알프홀의 목조 구조가 소리를 증폭하고 따스하게 감싸주길 원했다.” 조연호씨는 연주홀을 콘크리트 대신 목조로 건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주홀에 따로 무대를 설치하지 않은 것도 의도적이었다. 무대의 가장자리가 해안선처럼 바다와 육지를 나누는 인상을 주어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공연할 때 그 효과가 발휘됐다. 2025년 8월 조연호씨가 이끄는 ‘충남 챔버하우스 오케스트라’ 창단 공연이 열렸다. 충남 지역에 거주하는 전업 음악가 35명으로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팀파니 등 완전한 편성을 갖추고 있다. 이날 공연은 오케스트라 악기를 설명하는 해설 콘서트 형식으로 열렸다.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접하지 못해온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기획했다.
연주홀에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자 연주자가 절반, 관객이 절반인 상황이 됐다. “처음에는 ‘이 작은 공간에서 오케스트라가 되나’ 싶었는데, 연주홀에 소리가 꽉 차 있으니까 현악기의 작은 소리도 선명하게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관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정말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관객 최성흠씨가 말했다.
“인간 관계가 회복하는 장소”
바드 챔버하우스는 대공연장과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을 연주자들에게도 제공한다. 상주 음악가인 첼리스트 정호승(39)씨는 연주할 때 경험한 관객들과 교감을 이야기했다. “대공연장에서는 준비한 것을 한 방향의 전달하지만, 여기서는 공유가 됩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관객의 몸짓과 숨소리가 다 느껴지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씨는 라이브의 힘을 말했다. “음악을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느꼈을 때, 진정한 클래식 애호가가 된다고 믿어요. 한 번 왔던 관객이 계속 오고 다른 공연도 찾아가시더라고요.”
조연호씨는 “끊어진 인간적 관계를 회복하는 장소”라고 규정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 사이에 장벽이 세워졌고, 궁금한 일이 생기면 친구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찾는 현실에서 인간의 고독과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 그래서 바드 챔버하우스에 오는 이들만이라도 그 장벽을 잠시 내려놓고, 연주자와 관객, 관객과 관객이 따뜻한 울림으로 서로 소통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그는 말했다.

예술가들의 실험장으로
또한 바드 챔버하우스를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충돌하고 발현되는 일종의 ‘실험실(Lab)’로 만들고 싶다고 조연호씨는 말했다. 그의 실험은 연주곡의 자율성에서 출발한다. 보통의 공연장이 관객의 입맛이나 티켓 판매를 고려해 대중적인 곡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조연호씨는 연주자들에게 항상 묻는다. “이 곡들을 평소에 연주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그는 연주자가 낯선 나라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오랫동안 갈고닦은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설령 그 곡이 난해해 처음에 낯설게 다가가더라도, 연주자의 열정과 애정이 묻어난 무대는 결국 관객에게 더 큰 진동으로 돌아온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씨는 그의 철학에 깊이 공감한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기에 저를 위해서 음악을 해요. 하지만 음악을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 진지하게 연주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관객들이 분명히 뭔가 느낄 거라고 믿어요.”
첼리스트 정호승씨는 실제로 생소한 레퍼토리를 “관객들이 놀라울 만큼 편견 없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큰 공연장에서는 관객과의 거리가 있다 보니 음악이 와 닿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이곳에서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거부감 없이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이곳을 계속 찾게 만드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또한 상업성과 흥행 가능성 때문에 공연장을 잡기 어려운 음악가들을 위해, 공연장을 대관료 없이 열어주는 ‘무료 대관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이 방식으로 열린 공연이 18~19회에 달할 정도로, 바드 챔버하우스는 젊은 음악가들의 ‘실험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인문학 강의와의 결합한 ‘인문학적 통찰이 있는 음악회’도 시도한다. 첫 실험으로 동양철학 강의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공자 이야기’를 오는 2월부터 선보인다. 음악이라는 청각적 경험에 철학적 사유를 더해, 관객들이 예술을 다각도로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려는 시도다.
상주 음악가들의 공연도 실험적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민희씨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첼리스트 정호승씨는 바흐 무반주 독주를, 피아니스트 조영훈씨는 마스터피스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시대악기 전문연주단체인 앙상블 패치워크의 공연도 예정돼 있고, 유구읍의 여름 수국축제와 결합한 클래식 음악 축제도 검토 중이다.

새해 첫 공연 17일 바로크 첼리스트
바드 챔버하우스 알프홀의 새해 첫 무대는 바로크 첼리스트 이현정씨가 오는 1월17일 토요일 오후 5시에 연다. 이날 무대는 바흐 무반주 모음곡 전곡 녹음을 마친 이현정씨가, 자신의 음반을 바탕으로 바로크 첼로의 세계를 들려주는 강의 콘서트 형식이다. 연주와 함께 작품·시대 배경을 설명하는 해설이 더해져, 전문 연주자뿐 아니라 클래식 초심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바드 챔버하우스 공연 티켓은 일반적으로 3만~4만원인데, 이번엔 “새해 특별한 선물”로 기획해 50명 정원 한정으로 무료로 진행한다.
음악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공동체가 생긴다. 바드 챔버하우스는 음악을 통해 소외된 지역에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막에 스타벅스가 있는 것”처럼 특이하고 신선하게.
글·사진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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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380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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