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아프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할까요?”

지난 12월19일 경남 김해시 삼계동 앤어린이집에서 전규비(53) 원장이 18명의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자 3살, 4살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답했다. “나무를 심어요.” “물을 아껴요.” “쓰레기를 줄여요.”

전 원장이 구체적인 질문을 계속 던졌다. “우리 양치할 때 물을 어디에 받아요?” “우리 손 씻고 손을 어디에 닦아요?” “견학 갈 때 엄마가 과자를 어디에 담아주나요?” 아이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컵이요.” “수건이요.” “과자통이요.”​

클라이맥스는 환경 동요 ‘지구가 아프대요’였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함께 부르는 그 가사에 아이들의 답변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지구가 지구가 아프대요/ 아야 아야 울고 있대요/ 지구야 지구야 아프지 마/ 우리가 호호 치료해줄게.”

매주 월요일 오전에 앤어린이집 아이들은 목장갑을 끼고 어린이집을 나서 ‘쓰레기 보물찾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줍깅 활동을 펼친다. 앤어린이집 제공
매주 월요일 오전에 앤어린이집 아이들은 목장갑을 끼고 어린이집을 나서 ‘쓰레기 보물찾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줍깅 활동을 펼친다. 앤어린이집 제공
줍깅(조깅하며 쓰레기 줍기) 활동을 할 때 어른들은 눈에 띄는 큰 쓰레기를 줍지만, 아이들은 담배꽁초, 비닐 조각까지 세심하게 주워온다. 앤어린이집 제공
줍깅(조깅하며 쓰레기 줍기) 활동을 할 때 어른들은 눈에 띄는 큰 쓰레기를 줍지만, 아이들은 담배꽁초, 비닐 조각까지 세심하게 주워온다. 앤어린이집 제공

매주 월요일은 ‘쓰레기 보물찾기’

앤어린이집은 김해시의 탄소 중립 정책을 가장 먼저, 가장 실천적으로 수행하는 현장이다. ‘영아와 부모, 그리고 어린이집이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 ‘&’처럼, 이곳에서는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 주민이 함께 탄소 중립을 실천한다.​ 시작점은 미세먼지가 극심하던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 원장은 아이들과 야외활동을 준비하다가 미세먼지 경보 때문에 외출을 자꾸 포기해야만 했다. 노란 조끼를 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던 아이들이 다시 조끼를 벗으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때가 전환점이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고 있구나 깨닫고, 선생님들과 같이 환경 교육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어린이집 안에서만 분리배출, 반려식물 키우기 같은 소소한 활동부터 했어요.” 전 원장이 회상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잖아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환경 교육을 받으면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매주 월요일 오전에 아이들은 목장갑을 끼고 어린이집을 나선다. ‘쓰레기 보물찾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줍깅(조깅하며 쓰레기 줍기) 활동을 위해서다. 어른들은 눈에 띄는 큰 쓰레기를 줍지만, 아이들은 담배꽁초, 비닐 조각까지 세심하게 주워왔다. “아이들이 작은 쓰레기를 금방 찾는 걸 보면서 정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구나 싶더라고요.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거울삼아 보고 배우니까요.” 전 원장이 말했다.

하지만 어린이집만의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가정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의 변화가 지속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활동 범위를 학부모로, 그리고 지역 주민으로 확장했다. 천연 아로마 오일 만들기 등 학부모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음식·물 탄소발자국 줄이기, 계단 오르기, 쌀뜨물 활용하기, 10분간 소등하기, 텀블러 사용하기 등을 탄소 중립 실천 미션으로 매달 제공했다.​ ​

4월22일 지구의 날과 8월22일 에너지의 날에 소등 행사에 참여한 가정의 후기. 앤어린이집 제공
4월22일 지구의 날과 8월22일 에너지의 날에 소등 행사에 참여한 가정의 후기. 앤어린이집 제공
앤어린이집에서는 ‘탄소발자국 줄이기’ 활동으로 음식물 남기지 않기를 실천하고 있다. 앤어린이집 제공
앤어린이집에서는 ‘탄소발자국 줄이기’ 활동으로 음식물 남기지 않기를 실천하고 있다. 앤어린이집 제공

“할머니, 물 많이 틀지 마요”

앤어린이집의 탄소 중립 교육은 교실을 넘어 가정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2023년에 손주 조현성(4살)을 앤어린이집에 보냈던 할머니 정외숙(55)씨는 “처음에는 어린이집에서 자꾸 (미션을) 주니까 좀 귀찮더라. 엘리베이터 타지 말고 계단 올라가는 거 사진 찍어서 올려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주의 변화를 보며 달라졌다. “아이가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집안에서도 캔은 캔으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을 해요. 물을 쓸 때면 ‘할머니, 물 많이 틀지 마요’라고 당부하고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가서도 ‘쓰레기 버리면 안 된다. 지구가 아파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정하율(3살)의 엄마 신현미(40)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길에서 쓰레기를 보면 ‘누가 버린 거야?’라고 아이가 화를 내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나쁘냐’고요.” 어린이집의 탄소 중립 활동을 함께하다 보니 신씨의 습관도 달라졌다. “원래 텀블러를 잘 안 썼는데 어린이집에선 항상 챙겨오라고 하니까 이제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됐어요.”​

박민하(2살)의 아빠 박성호(37)씨는 각기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자녀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첫째가 다니는 곳은 가정통신문을 종이로 보내주는데 둘째가 있는 앤어린이집은 앱을 사용하잖아요. 어린이집 입구부터 탄소 중립 활동이 가득 붙어 있으니까 아이를 데려다줄 때마다 마음가짐이 남달라지더라고요. 분리수거가 귀찮아서도 그렇지만, 일회용품을 최대한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화장실 불을 켜고 지냈는데, 둘째 아이가 어느 날부터 그 불을 끄더라고요.”

아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어른들의 일상을 바꾸고, 그것이 다시 아이들의 습관으로 자리 잡는 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앤어린이집의 사례는 김해시 탄소 중립 정책의 성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텀블러 사용을 홍보하는 모습. 앤어린이집 제공
텀블러 사용을 홍보하는 모습. 앤어린이집 제공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에 물을 주는 모습. 앤어린이집 제공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에 물을 주는 모습. 앤어린이집 제공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을 살펴보는 아이들 모습.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을 살펴보는 아이들 모습.

인조꽃 근절부터 ‘기후 포인트’까지

김해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39.8% 감축, 2050년 탄소 중립 실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환경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김해시 기후대응과 윤은진씨는 “시민들의 인식 전환과 생활 실천이 언제 어디서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공원묘원 플라스틱 조화(인조꽃) 근절 사업이 꼽힌다. 2022년 4개 공원묘원과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와 함께 업무협약을 맺고, 조화 대신 생화를 사용하도록 했다. 전국 최초로 시행한 이 정책으로 연간 관내 쓰레기 43t, 탄소 119t 이상을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그 결과 2023년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에서 상을 받았다. ​

또한 환경부 주관 ‘탄소중립포인트제’ 운영 평가에서 4년 연속 우수 지자체로 선정됐다. 2025년 11월 기준 탄소중립포인트 에너지 부문에 가입한 가구 수는 4만 8599가구로, 지난 한 해 동안 감축한 온실가스는 1만 9195t에 달한다. 구체적인 활동을 보면, 매월 22일을 ‘2배로 2로운 탄소중립포인트 가입의 날’로 운영하고, 19개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와 3개 환경교육시설에 상설 가입창구를 개설했다. 또한 김해형 탄소중립포인트 '기후지킴이 포인트'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만 14살 이상 김해시민 및 생활권자를 대상으로 탄소 중립 실천항목을 달성하면 포인트를 지급한 뒤 김해사랑상품권으로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실천 항목은 △수소차·전기차 구매 △탄소중립포인트 가입 △워크온(하루 8000보 이상) △함께 타GO 그린 가야(이동거리 2㎞ 이상) △녹색제품 구매 △다회용기 포장 도전 △텀블러 사용 등 14가지다.​​

경남 김해시 부곡동에 위치한 김해탄소중립체험관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탄소중립 인식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지구온난화 현상과 각종 환경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관람료는 무료다. 김해시 제공
경남 김해시 부곡동에 위치한 김해탄소중립체험관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탄소중립 인식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지구온난화 현상과 각종 환경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관람료는 무료다. 김해시 제공

시민이 만드는 탄소중립의 내일

김해시의 탄소 중립 정책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일상 속 작은 실천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계단 오르기, 텀블러 사용하기, 쓰레기 줍기 등이 모여 김해시를 4년 연속 환경부 우수 지자체로 만들었고, 2050년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오늘도 나아가게 하고 있다. ​​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글·사진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