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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선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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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25-09-29 10:52

파주에선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작성일 25-09-29 조회수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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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심학산 ‘시옷책방’의 독립영화


“컷. 아주 잘했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자.”

“딱 한 번만 가자는 게 벌써 여덟 번 째잖아요.”

강솟뿔 감독의 말에 아이들이 투덜댔다. 슬라이드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다시 진지 모드로 연기를 시작하는 찰나,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더니 천둥번개까지 내리쳤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8월말, 경기도 파주의 숨길 공릉천에서는 ‘공릉천에는 공룡이 없다’는 제목의 독립영화 촬영이 여러 날 이어졌다. 7살 어린이부터 84살 어르신까지 20여명이 모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연기에 도전하며, 촬영까지 하는 원대한 프로젝트였다.

이 ‘무모한’ 기획의 배후는 파주 심학산의 ‘시옷책방’ 김남기(소동) 대표다. 공릉천이라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난개발되고 망가지는 것이 아쉬워서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단다.

책 매출은 매년 단군 이래 최악을 갱신한다지만, 그래도 동네 책방은 꾸준히 늘어난다. 왜일까? 책방은 책을 파는 곳을 넘어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이자 문화공간으로 무한 변신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늘 혼자 작업하다가 공동체와 유대를 느낀 과정이었어요. 사람은 절대 혼자 살 수 없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예술도 그런 것 같아요”. 총연출을 맡은 강솟뿔 감독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동네 책방이야말로 ‘마을금고’ 같은 곳이라고 했다. 표현하고 싶은 마음, 나누고 싶은 마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빌려 쓰고, 저축도 하는.

독립영화 참여자들이 영화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시옷책방
독립영화 참여자들이 영화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시옷책방

영화 ‘더 파이브’의 원작자이자 감독으로서 광고, 웹툰 등 여러 작업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강 감독에게도 이번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출연자가) 모두 생초보고, 그래도 어른들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되지만 아이들은 제멋대로라 당황했어요. 주인공 하고 싶다고 떼쓰다가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면 힘들다고 울면서 도망가버렸죠.” 3회만에 끝낸다는 촬영 계획이 엉키고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감독님 보고 싶다고 울기까지 했다는 소식에 강솟뿔 감독은 울컥했다고 고백했다.

영화 좀 만들어봤다는 사람들은 잘 안다. 주인공이 아이거나 동물인 영화가 얼마나 힘든지. 이번 독립영화는 출연진 중 절반이 아이들인데다 말똥게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중 또 한 명은 할머니이기도 하다.

‘말똥게 요정’을 맡은 84살 조경자 할머니는 반전의 매력을 지닌 신비로운 인물로 극의 중심을 잡아가는 역할을 맡았다. 평소 끼가 넘치고 동화구연 등 여러 활동을 해온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첫날 첫 씬이 내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인데, 긴장해서 자꾸 틀렸어요.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또 주눅이 들어 긴장하다 보니 그 장면만 2시간을 찍었어요.”

혼자서 즉흥적으로 수정해도 되는 동화구연과 달리 영화 촬영은 상대방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 훨씬 어려웠다. “내 대사만 외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아이들하고 대사를 주고받는 상황이 되니 당황한 거예요. 그래서 다음 촬영부터는 아이들 대사까지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들어갔어요.”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과 충만함이 커졌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독립영화 ‘공릉천에는 공룡이 없다’ 포스터. 시옷책방 제공
마을 주민들이 만든 독립영화 ‘공릉천에는 공룡이 없다’ 포스터. 시옷책방 제공

‘토지’ 같은 인기드라마를 만든 작가 출신으로 2018년에 이미 ‘우주 최초’로 마을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선보였던 김선재 작가는 그때의 소중한 추억 덕분에 이번에도 이 무모한 도전에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독립영화에 참여한 20명 중 절반이 아이들인데다, 어른들도 시나리오 작업은 다들 처음이었어요. 참여자들이 낸 5편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공동창작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재미, 감동,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김 작가는 5편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종합할까 고민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챗지피티에서 돌려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대사는 빵빵 터졌는데, 챗지피티는 아직 ‘챗, 이 정도밖에’ 수준에 그쳤어요.” 김 작가는 쿨하게 말했지만 노고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옷책방에서 열린 어린이 곤충그리기 수업. 시옷책방 제공
시옷책방에서 열린 어린이 곤충그리기 수업. 시옷책방 제공

문득 사람들이 애써 새로운 예술활동을 시도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면서 자신이 성장하고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동네(책방)가 그런 걸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남기 대표는 이렇게 의미를 짚으면서 새로 벌이는 작당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작품을 한 편 이상 쓴 지역의 작가나 신규 작가 20명을 초청해 오는 10월18일 북페어를 열 예정이예요. 작가들이 직접 자기 작품 소개도 하고, 또 참가자들과 함께 작품 체험도 하려고 해요.” 지역의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데 관심이 많은 김 대표는 이미 10년 가까이 할머니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그들의 작품을 모아 책을 낸 적도 있다.

‘시시한 사진관’의 야외 수업 모습. 시시한 사진관 제공
‘시시한 사진관’의 야외 수업 모습. 시시한 사진관 제공

파주 교하 쩜오책방의 ‘시시한 사진관’

파주 교하의 심학산이 보이는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쩜오책방. 책방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쩜오책방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북토크나 책읽기 모임은 물론 일본어 공부, 그림 그리기, 사진 워크샵 등으로 늘 분주하다. 때로는 고춧가루, 더덕 등 농산물을 파는 구판장이 되고 두 달에 한 번씩은 안 입는 옷을 교환하는 물물교환 장터로 변신한다.

‘시시한 사진관’은 쩜오책방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다. 책방 조합원이자 사진활동가 김지하씨의 닉네임을 딴 이 프로그램은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참여한 사람은 없다.

“원래도 사진에 관심이 많았고, 틈틈이 찍어왔어요. 시시한 사진관 프로그램은 사진이나 카메라를 다루는 구도, 노출 등 테크닉보다는 사진을 찍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요” 지난 봄 첫 전시회를 한 김정일씨는 책방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파주 북소리축제에서 ‘시시한 사진관’ 수업 참여자들이 ‘경이롭게 경이롭게’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했다. 시시한 사진관 제공
지난해 파주 북소리축제에서 ‘시시한 사진관’ 수업 참여자들이 ‘경이롭게 경이롭게’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했다. 시시한 사진관 제공
지난해 파주 북소리축제에서 ‘시시한 사진관’ 수업 참여자들이 ‘경이롭게 경이롭게’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했다. 시시한 사진관 제공
지난해 파주 북소리축제에서 ‘시시한 사진관’ 수업 참여자들이 ‘경이롭게 경이롭게’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했다. 시시한 사진관 제공

수업을 이끄는 김지하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을 함께 찍고, 찍은 사진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의 삶, 시선, 고민을 나누게 돼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렇구나 하고 알게 되고, 그렇게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요.” 이 말 속에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활동가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도 담겨 있다. ‘말걸기’를 위한 도구, 과정으로서의 사진에 대한 접근이야말로 ‘시시의 사진관’이 가진 고유한 지점이다.

인간은 예술을 즐기는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가 되고픈 욕구도 크다. 시시한 사진관은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서로의 사진을 나누는 과정이다. 수업을 같이 듣는 이웃 두 명과 내년 초에 사진집을 펴낼 예정인 김정일씨가 말했다. “목표를 세우고 성취할 때의 뿌듯함도 있지만, 함께 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것 같아요”

21~58살 참여하는 마을잡지 ‘디어교하’

파주 교하 쩜오책방에서는 격주로 디어교하 기자단 회의가 열린다. 디어교하 제공
파주 교하 쩜오책방에서는 격주로 디어교하 기자단 회의가 열린다. 디어교하 제공

격주 월요일 오후 쩜오책방에는 마을 잡지 ‘디어교하’ 회의가 열린다. 디어교하는 교하 지역의 숨은 목소리와 시선을 찾겠다는 취지로 2017년 출발해 올해까지 만 8년 동안 24권을 펴냈다. 그동안 기자단만 30여명, 최연소 박산(대학생)씨부터 최고령 이동구(58살 문발우리술연구소장)씨, 그리고 두 딸을 키우는 일본 이주 여성 유리에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지난 7월 발행된 여름호 ‘이제 파주에 삽니다’에는 사진전을 연 동네 작가 세 명의 인터뷰와, 젊은 여성 사장 두 명이 운영하는 파주 대동리의 식당 ‘동그러니’를 소개한 우리 동네 공간 이야기, 유리에씨가 소개하는 다문화 이웃 등 다양한 지역 콘텐츠가 실렸다.

디어교하에는 기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문발 에세이’라는 코너가 있다. 박인애씨는 이번 호에서 대기업 프로그래머였던 남편이 실직한 뒤 겪은 생활고와 일자리 구하기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 긴급구호가 필요한 때다. 회사가 흑자인 경영주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매달 월급이 나오니까 그 실정을 모른다…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실업, 내 일이 아니니까 모르는 척해도 괜찮은가. 지금 이 사회는 몹시 아프다.”(디어교하 2025년 여름호)

어떻게 지난 8년 동안 외부의 지원도 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주머니을 털어가며, 또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가며 디어교하를 만들어왔을까. “디어교하를 만들면서 새로운 사람, 이웃, 공간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어요. 많은 분들의 협업 덕분에 결과물도 근사하지만, 무엇보다 만드는 과정에서 이웃들과 유대를 나누며 친밀감도 느낄 수 있어 즐거워요.” 디어교하의 원년 멤버인 박인애씨는 디어교하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호흡으로 각자의 속도로 참여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웃을 알아가는 소통의 도구라고 설명한다.

디어교하 여름호에 소개된 파주 대동리 식당 ‘동그러니’ 의 두 여사장. 디어교하 제공
디어교하 여름호에 소개된 파주 대동리 식당 ‘동그러니’ 의 두 여사장. 디어교하 제공

인간은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충만함을 느끼는 존재다. 예술은 자신을 표현하고, 이웃을 이해하며 세상과 만나는 과정이며 ‘좋은 삶’을 향한 여정이다. 파주에서 주민들은 영화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웃과 소통하고 있다. 시옷책방, 쩜오책방과 같은 책방이 있는 동네에서, 예술은 손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

※ 이번 ‘우리동네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는 파주에서 마을살이를 하는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이 보내왔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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