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돈으로, 자부심은 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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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돈으로, 자부심은 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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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것, 이건 페트라고 해요. PET. 플라스틱은 종류가 몇 가지 있는데, 하다 보면 금방 배워요.”
지난 7일 오후 3시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3동 행정복지센터 앞 ‘신흥삼 성남자원순환가게’. 자원순환가게 직원 서인정(70)씨가 분리배출대에서 재활용품 무게를 재며 플라스틱의 재질(무색페트병, PET, PE, PP, PS, OTHER)을 구분하는 법 등을 차근차근 안내했다. “유색은 유색끼리, PP는 PP끼리 모아주세요. 형제끼리 모으는 거예요.” “샴푸 펌프에는 금속이 들어 있어서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할 수가 없어요.” 매주 목요일 오후 2~5시에 열리는 신흥삼 자원순환가게 현장은 올바른 분리방법을 배우는 살아있는 환경 교육장이었다. 하루 평균 40~50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전국 최초, 성남의 RE100 자원순환가게
성남시의 자원순환가게는 2019년에 수정구 신흥2동에서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캔류, 플라스틱류 등 9종의 재활용품을 “제대로 비우고, 헹구고, 분리해” 가져오면 1㎏당 50~600원의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이 포인트는 현금처럼 쓰거나 화장지, 쓰레기봉투 등 생활필수품으로 교환할 수 있고, 자원순환가게로 모인 자원은 100% 재활용된다.
지난 2019년 6월부터 2025년 6월까지 10만1687명이 참여해 약 806t의 폐기물을 재활용했고, 2억 114만원가량을 시민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이는 소나무 9156그루를 심은 것에 맞먹는 탄소 저감 효과다. 성남시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50~60%로, 전국 평균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처음엔 분리 기준을 몰라 헤매던 시민들도 자원순환가게를 이용하면서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는 습관을 점차 익혀갔다. 신흥3동에 사는 김점숙(55)씨는 2년 전부터 분리수거를 실천해왔다. 그전에는 집 앞에다 재활용품을 한꺼번에 내놓았는데, 대부분 태워진다는 걸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깨끗하게 배출하면 다시 쓰일 수 있는데 나에게도 득이 되니까 (자원순환가게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 6개월은 플라스틱에 적힌 글씨가 작고 재질별로 분리하는 것도 헷갈렸다. 하지만 이제는 설거지할 때 플라스틱도 같이 깨끗이 헹궈 재질별로 모아뒀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배출한다. 이웃들에게도 분리 배출 방법을 알려주고, 깨끗하게 분리해놓으면 대신 자원순환가게로 옮겨다 준다. 분리수거가 번거롭지 않냐는 질문에 김씨는 고개를 저었다. “주부들에게 힘든 일이 아니에요. 특히 여름철엔 음식 찌꺼기가 남은 플라스틱에서 냄새도 났는데, 깨끗하게 씻어두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습관이 만들어낸 문화…“나도 할 수 있다”
역시 신흥3동에 사는 서인정씨는 2021년 신흥삼 자원순환가게가 개점했을 때 자원순환관리사로 활동했다. 한두 명이 한 달 동안 재활용품을 모아 사진으로 기록하는 봉사활동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신흥삼 자원순환가게가 성남에서 가장 많은 주민이 찾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는 자원순환가게 기간제 직원이 됐다. 서씨는 “분리배출이 이제 동네 문화로 자리 잡혀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동네에 버려진 플라스틱까지 모으면 한달에 20만~25만원, 집에서만 모아도 몇만원은 벌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보다 더 큰 자부심은 환경과 미래를 위한 실천이라는 점이다. 플라스틱을 올바르게 배출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되지 못한 채 소각돼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키는데, 자원순환가게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서씨는 강조했다. “자녀들은 쓰레기를 모아 놓는다고 싫어한다지만, 저는 작은 실천이 우리 자손과 지구를 살리고,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데 일조한다고 말합니다. 또 재활용품을 갖고 오는 분들에게 ‘수고했다’ ‘애국자다’라고 칭찬도 하고요. 그러면 시민들이 ‘그런 말 듣고 싶었어요’라고 좋아하죠.”
그는 “‘우리 동네엔 아직 없다’고 많이들 아쉬워한다”며 동네마다 자원순환가게가 생기면 누구나 자기 집 가까운 곳에서 재활용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솔복지관, 작은 실천이 문화를 바꾼다
성남자원순환가게는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지난 6월, 분당구 금곡동 청솔종합사회복지관(청솔복지관) 옆에 ‘자원순환가게 청솔점’이 추가로 개점했다. 이번 개점으로 성남자원순환가게는 총 23곳으로 늘었다. 청솔점에서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 고정 설치된 캔 수거함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알루미늄·철캔은 수거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런데도 하루 평균 30명 이상 참여한다. 청솔복지관은 2017년부터 우유팩 수거·잔반Zero 캠페인, 자원순환실천서약서 등 다양한 생활 속 환경운동을 이어오며 ‘지속가능한 생활문화’를 실험해왔다. 지난 12일에 조경화 복지사업과장과 김현웅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그들과 나눈 일문일답.

― 아파트 단지에 자원순환가게가 들어선 건 새로운 시도다. 어떻게 시작했나.
김현웅 “2017년부터 우유팩과 건전지를 모아 휴지나 쓰레기봉투로 교환해주는 자원순환 정거장을 운영해왔다. 지난해부터는 RE100 운동도 복지관 내부에서 실천해왔는데 이번에는 아파트 단지 주민과 함께 자원순환 가게를 열면 좋을 듯해서 입점을 요청했다.”
―주택 단지와는 운영 방식이 다르다고.
김현웅 “아파트 단지는 재활용품을 관리비 절감용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서로 겹치지 않게 관리사무소와 품목을 나누기로 했다. 페트병처럼 처리하기 번거로운 품목을 복지관이 맡고, 철이나 알루미늄은 기존 수거 업체가 맡는 방향으로 타협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조경화 “처음에는 귀찮아하다가도, 막상 참여하면 습관이 바뀌었다. 혼자 분리 배출할 때는 잘 체감 못 하지만, 함께 모아오니 ‘쓸모 있는 행동’을 한다는 자각이 생겼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내가 기여하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중요한 동기 같다.”
김현웅 “7월 중순부터 자원순환 서약서를 받았다. 실제로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관심을 행동으로 표현하면 동기부여가 되니까. 지금까지 80~90명 정도가 서약했다.”
―자원순환 활동은 어떻게 시작했나.
조경화 “처음 우유팩 캠페인은 성남환경운동연합과 함께 민간 거버넌스 형태로 했다. 그 캠페인으로 우유팩 15개만 모아도 휴지와 교환할 수 있도록 성남시의 제도를 바꿨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보상 기준’을 마련하면서 참여율이 크게 높였다. 결국 제도와 시민 참여가 함께 가야 한다.”
―복지관 업무가 꼭 환경과 직결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나.
조경화 “처음엔 업무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몇 년 하다 보니 나 또한 생활 습관이 바뀌더라. 우유팩을 그냥 버리면 죄책감이 들 정도다. 남편은 ‘너 혼자 세상 못 바꿔’라고 하지만, 내가 변하고 주민들도 변하면 결국 세상도 조금씩 바뀐다고 생각한다.”
김현웅 “집안이 고물상을 해 자연스럽게 관심이 많았다. 맡은 업무이기도 하지만, 환경이 나아졌으면 하는 진심이 있다.”

어르신 160명과 함께하는 ‘잔반Zero’
청솔복지관은 8월부터 무료 경로식당을 이용하는 어르신 160명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잔반Zero’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식사 때마다 어르신들에게 자신이 먹을 만큼만 가져갈 것을 안내하고 하루 잔반을 72㎏에서 61㎏으로 줄이는 게 목표다. 이렇게 월 잔반이 1.5t에서 1t으로 줄어들면 어르신들에게 쌀 1㎏을 모두 선물하기로 했다. 김현웅 복지사는 “동기부여가 확실해 캠페인 첫날 잔반량이 20%가 줄어드는 놀라운 성과가 났다”고 말했다.
성남자원순환가게와 청솔복지관의 캠페인은 지역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 분리배출을 생활습관으로 정착시키고, 어르신과 주민 모두가 직접 참여하는 환경 실천의 장을 만들어냈다. 재활용과 자원순환은 ‘누군가의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글·사진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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