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종자콩, 일자리·청년·미래 농업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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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종자콩, 일자리·청년·미래 농업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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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밤이면 밥상 위에 비닐을 깔고 앉아 좋은 콩·나쁜 콩을 골라내던 강석자(69)씨는 요즘 “세상 편해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수확한 콩을 선별해 일부는 국립종자원에 종자로 대고, 남은 콩은 부산 청국장 공장까지 트럭에 싣고 다니며 ‘어떻게든 팔아야’ 했지만, 이제는 농업회사법인 한국에코팜이 판로와 가격, 선별까지 한꺼번에 맡아주기 때문이다.
몬산토에서 CJ까지, ‘종자 회사’를 세우다
한국에코팜은 2012년 4월 설립된 농업회사법인으로,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 본사를 두고 있다. 김영균(50)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유아용품 매장을 10여년 운영하다가 귀농해 이 회사를 세웠다. 국세청 업종 분류상 ‘곡물·곡분 및 가축 사료 소매업’을 주업으로 하는 중소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콩·벼·녹두·팥 등 국내산 농산물의 종자를 대기업과 협력해 개발·증식하고, 농민과 계약재배를 맺어 원물을 납품하는 종자·원료 공급회사다.
다국적 기업 몬산토와 콩·벼 등 종자 생산을 해본 김영균 대표는 예천으로 돌아온 뒤 마을 주변에 채종단지를 조성해 종자콩 품종을 테스트하고, 품종별 수량·수율·병충해 저항성 등을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몬산토와 협업하며 종자를 키웠지만, 2015년 CJ제일제당이 종자 관련 법인 ‘CJ브리딩’을 설립하자 2016년부터는 CJ와 손잡고 국산 종자 개발에 뛰어들었다. CJ 누리집과 대표전화로는 담당자를 찾기 어렵자, 서울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CJ브리딩 임원·연구진을 김영균 대표가 직접 찾아갔다. 그는 예천 현장을 보여주고 “우리 회사가 사험밭을 맡을 테니 현장 실험을 함께 해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시작된 협업을 바탕으로 지금은 콩·녹두·보리 등 다양한 작물의 종자를 증식하고, 이 종자를 농민들에게 보급한다.


‘행복한콩’ 뒤에 선 예천의 콩 선별라인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CJ제일제당 ‘행복한콩’ 브랜드다. 콩나물용 행복한콩 종자의 생산·판매 신고증을 보유한 덕분에 한국에코팜이 종자부터 원물까지 책임진다. 다시 말해, 한국에코팜이 종자를 전국 농가에 ‘시집보낸’ 뒤, 수확된 콩을 다시 예천 선별공장으로 모아 깨끗이 골라 CJ에 납품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320종의 잔류농약 검사, GMO 검사, 발아세·발아율 검사 등을 거쳐 최고의 종자를 선별하는 게 특징이다. 수확된 콩 가운데 발아력이 85% 이상인 종자만 선별해 1t 단위의 ‘원원종’으로 묶고, 이 원원종을 다시 특별 관리하는 밭에 심어 다음해 종자를 생산하는 다단계 채종 체계도 갖췄다.
한국에코팜은 선별장도 ‘완성품’이 아니라 계속 손보고 업그레이드하는 시설로 관리한다. CJ가 요구하는 품질 기준을 맞추기 위해 경북도의 5억원 지원을 발판 삼아 10억원이 넘는 자부담을 들여 콩 선별 라인을 들여온 뒤에도, 매년 설비를 교체·보강하며 3~4년에 걸친 시험 가동과 품질 테스트를 반복해왔다. 그 결과 “농업회사법인 가운데 콩 선별 퀄리티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김영균 대표는 “선별 기계·라인을 계속 손보면서 유지·관리 시스템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코팜의 또 다른 얼굴은 ‘녹두 기업’이다. 예천 기후에 맞는 녹두 신품종을 CJ브리딩과 함께 개발해 종자와 원물을 함께 공급하면서, 콩 중심이던 타작물 재배 단지를 녹두로까지 넓혔다. 논에서 벼 대신 녹두를 심는 논타작물 재배 면적은 30헥타르에서 100헥타르로 늘었고, 이렇게 생산된 녹두는 종자로는 전국 각지로, 원물로는 가공업체와 대기업으로 나가며 ‘예천발 국산 녹두’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씨앗 한 알이 만든 ‘일자리 농업’
한국에코팜의 종자 모델은 경북 농촌의 일자리와 소득 구조를 바꾸고 있다. 김영균 대표가 귀농하기 전에는 농한기마다 비닐하우스에서 품팔이를 하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종자 생산과 계약재배를 통해 보다 안정적인 수입과 휴식 시간을 보장받는다. 처음에는 콩 계약재배에 참여한 농가가 10곳에 불과했지만, 이후 예천군 100여 농가를 포함해 상주·구미·안동·의성·영양·영주 등 전국으로 확대됐다. 한국에코팜이 경북의 대표적 ‘사회적기업’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김영균 대표는 예천에서 시작한 종자·계약재배 모델을 ‘희망 씨앗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으로 넓혀가고 있다. 구미·상주·의성·전남·전북 등지에 씨앗과 농기계, 회원 농가 네트워크를 한 묶음으로 넘겨주고, 각 지역 법인이 파종·방제·수확을 맡는 대신 그 지역에서 거둔 곡물은 다시 한국에코팜 브랜드로 모이게 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김 대표는 “법인은 파종·방제·수확을 해주면서 수수료를 받고, 수확물은 전량 한국에코팜으로 들어오게 해 농민과 법인 모두가 이익을 보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모델을 안정적으로 굴리기 위해 그는 “한국에코팜에서 2~3년 같이 일한 젊은 친구들을 각 지역 법인 대표로 내보내고, 본사는 유지·관리와 품질 관리를 맡는 시스템”을 장기 목표로 세워 후계자와 조직을 하나씩 마련해 가는 중이다.

콩 공장에서 성장하는 청년 농부
부모 농사를 잇기 위해 예천에 남은 김희성(24)씨에게 한국에코팜은 그래서 ‘직장’이라기보다 농업 창업을 위한 ‘학교’에 가깝다. 농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이곳에서 4~5년 동안 콩·녹두 재배는 물론, 대기업과 맺는 계약재배 방식, 농산물 마케팅, 각종 농기계 자격증과 드론 방제 기술까지 몸으로 익혔다. 그리고 이제 고령 농가의 파종과 수확을 대신하는 농작업 대행 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귀농은 내려오면 되는 줄 알고 왔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코팜에서는 콩·녹두 농사뿐 아니라 마케팅·계약재배·기계 운용까지 같이 배울 수 있습니다. 또 중간에 막히더라도 대표님께 SOS(구조요청)를 쳐서 언제든 자문을 구할 수 있고요.”(김희성씨)
지난 10년간 한국에코팜을 중심으로 예천의 풍경이 달라졌다. 밤마다 밥상 위에 콩을 고르던 일손이 선별장 기계 앞으로 옮겨갔고, 농한기에 품을 팔러 다니던 어르신들은 종자콩 관리와 계약재배 수확으로 겨울살이를 버틴다. 콩과 녹두, 종자와 선별, 사회적경제와 청년 실습을 한데 묶어 세운 이 농업회사법인이, 지방 소멸을 걱정하던 농촌 마을을 ‘다음 세대 농업’을 시험하는 거점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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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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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559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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