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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햇빛, 바람이 무너져가던 마을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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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5회 작성일 25-07-07 10:09

친구와 햇빛, 바람이 무너져가던 마을을 살렸다

작성일 25-07-07 조회수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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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봉황면 죽석리의 대실길을 따라가면, 논과 밭, 소박한 시골집이 이어지는 한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길가에는 계절마다 들꽃이 피어나고, 그 사이로 주황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나주대실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는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과 더불어 마을카페 ‘미미락’이 자리해 있다. 이곳은 주민과 방문객 모두가 편하게 들러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마치 작은 계획도시를 연상케 하는 깔끔한 동네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새로 지어진 특색 있는 집들이 줄지어 있고, 넓고 반듯하게 정돈된 마을길이 이어진다. 큰 나무 아래에는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고, 곳곳에 심어진 꽃과 나무, 잘 가꿔진 화단이 마을을 한층 더 환하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담장을 없애고 대문을 활짝 열어두어 누구라도 들어와 구경할 수 있는 집들이다. 마당 한쪽에는 공작새가 있고, 크고 작은 조형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 “마을이 너무 예뻤다. 햇빛이 딱 비치는데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6년 전 귀촌한 주민 한정아(54)씨는 이곳에 땅을 사고 주말마다 밭농사를 짓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0년 초, 대실마을에는 무너져가는 기와집과 방치된 빈집들이 즐비했다. 대실마을 제공
2010년 초, 대실마을에는 무너져가는 기와집과 방치된 빈집들이 즐비했다. 대실마을 제공

15년 전, 사라질 위기의 농촌 마을

그러나 불과 15년 전만 해도 대실마을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2010년 초, 마을 입구에는 무너져가는, 방치된 빈집들이 즐비했다. 기와는 군데군데 깨져 내려앉았고, 담벼락은 허물어져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골목길은 비좁고,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어 통행이 불편했다.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길에는 물웅덩이가 생기고, 곳곳에 쓰레기와 생활 폐기물이 쌓여 있었다. 마을회관조차 없어 1인 가구가 된 어르신들은 각자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장 정중기(70)씨는 “마을이 너무 낙후돼 이대로 두면 마을이 사라지겠다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실마을이 ‘사라질 위기의 농촌’에서 ‘신도시 같은 농촌’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1950~6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한 귀향의 흐름이 있다. 도시로 떠났던 이들이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새집을 짓고 정착하는 전통이 대실마을에 생겼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의 추억, 가족 같은 이웃, 그리고 고향의 따뜻함”을 그리며 매년 1~2가구씩 귀향해, 대실마을의 인구는 느는 추세다. 현재 마을주민은 21가구, 48명이다.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마을회관을 건립했다.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마을회관을 건립했다.

“가족 같은 이웃…그래서 돌아왔습니다”

지난달 18일 마을카페 미미락에서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온 마을 주민들을 여럿 만났다. 이들은 왜 다시 대실마을에 돌아왔을까. ‘친구’가 첫손에 꼽혔다.

노인회장 홍점영(75)씨는 “객지 친구들은 그때뿐이고 그래도 소꿉친구가 제일이라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곧이어 농담이 이어졌다. “우리가 어렸을 때 코 흘릴 때 막 싸우고 그랬거든. 그때 승부를 못 봤어. 누가 이겼냐, 네가 졌냐, 이게 늙어서 만나서 그 담판 내고 가야 돼, 갈 때는.”

정방기(74)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객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고향에 가고 싶더라고. 여러모로 옛날에 나누던 정도 있고. 그런 생각 하니까 고향으로 가야겠다 싶던데.”

땅이 있다는 것도 힘이 됐다고 염규석(74)씨가 말했다. “땅도 있고 집도 있고 (이웃) 형님들이 좋아서 형님들이 좋고 잘 이끌어주니까.” 송문교(62)씨가 거들었다. “시골이 좋고, 우리 마을을 너무 좋아하고, 노후를 여기서 보내려고.”

대실마을복지영농조합 대표 홍길식(75)씨는 “우리 마을은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게 전통”이라고 결론지었다. “(마을의) 집들이 다 새집들이지. (정부) 지원받아서 하는 게 없어. 다 자기들이 했지.”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공동체 문화가 다시 살아났다. “날마다 모여 밥을 먹고, 울력으로 마을을 가꾸고, 서로의 안부를 챙긴다.”

홍길식씨와 정중기씨가 외로울 틈이 없는 일상을 들려줬다. “도시와 달리 시골은 눈뜨면 밖으로 나오게 돼 있어. 걸어서 한 바퀴 돌고 텃밭 가꾸고 그게 생활의 전부지. 선선해지면 친구들이랑 술 먹고 밥 먹고 앉아서 놀고 노닥거리고, 노후에 그 이상 더 좋은 게 없고.”(홍길식씨) “오늘도 (이웃이) 감자를 한 박스씩 갖다 놓고 갔지. 참기름 짜면 병을 갖다 놓고. 옛날 같으면 다 돈으로 주고받았겠지만, 지금은 다 나눠. 요즘 세대가 느껴보지 못한 공동체의 정을 우리끼리 느끼며 사니까.”(정중기씨)

홍점영씨는 마을을 깨끗하게 가꾸는 것이 곧 공동체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울력(공동작업)이라고 하거든. 힘을 모아서 일한다, 다 같이 마을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지.”

한정아씨는 대실마을만의 개방적인 공동체 문화를 경험담으로 전했다. “마을 텃세도 없고,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주는 분위기라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다 같이 밥도 먹고, 울력도 함께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언제든 우리 집에서 가져다 쓰라고 한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웃마을에 사는 임동신(81)씨는 “어머니 품 같은 마을”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집을 가면 좀 싸늘한 기분이 있고, 어느 집을 가면 온화한 기분이 있는데, 대실마을에 오면 가슴에 고동 소리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다. 날마다 와서 차도 마시고, 이웃들과 어울리는데 마음이 푸근해진다.”

대실마을은 마을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울력(공동작업)을 자주 한다. 주민들이 도로변에 꽃을 심는 모습. 대실마을 제공
대실마을은 마을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울력(공동작업)을 자주 한다. 주민들이 도로변에 꽃을 심는 모습. 대실마을 제공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는 공동체의 꿈”

대실마을의 공동체 문화는 단순한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노후와 죽음까지도 함께하는 ‘삶의 완성’을 지향한다. ‘마을에서 함께 살다가 요양원에 가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대실마을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다.

홍길식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 출신들은 늙어서 요양원에 가지 말고 태어난 마을에서 같이 살다가 생을 마감하자는 거지. 요양원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감옥인데, 여기서는 자유롭게 친구들과 밥도 먹고, 텃밭도 가꾸고, 그게 진짜 행복이니까.”

정중기씨가 덧붙였다. “마을공동체 안에서 점심도 같이 먹고,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지원하는 복지 시스템도 갖추려고. 우리 마을에는 요양보호사도 이미 3명이나 있고. 앞으로는 의료·복지 서비스를 마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장 정중기(오른쪽)씨가 대실마을에서 운영하는 공유배터리 모빌리티(전기카트)을 시범 운전해 보이고 있다.
이장 정중기(오른쪽)씨가 대실마을에서 운영하는 공유배터리 모빌리티(전기카트)을 시범 운전해 보이고 있다.

종합해보면, 지난 15년간 대실마을 공동체는 세 단계의 변화를 추구했다. 1단계는 낙후된 마을을 깨끗하게 정비하는 것, 2단계는 소득사업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3단계는 생을 마을에서 마감할 수 있는 복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2단계가 진행 중이다. 이장 정중기씨에게 대실마을이 걸어온 길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마을을 바꾸기 위해 어떤 일을 했나?

“제일 먼저 마을회관을 지었다. 어르신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니까. 그다음엔 폐가 정리, 주거환경 개선, 재래식 화장실 없애기, 안길 넓히기, 꽃길 조성 등 경관 사업을 차례로 했다. 아스팔트도 깔고, 화단도 만들고, 마을이 점점 예뻐졌다.”

―분구는 왜 추진했나?

“마을회관 짓고 나서, 우리만의 마을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분구를 추진했다. 2012년에 분구가 이뤄지면서 대실마을이 독립적인 행정 단위가 됐다. 그때부터 우리 뜻대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마을 소득사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9년에 자율개발사업으로 친환경 미꾸라지 추어탕 체험, 두부 만들기 체험 등 여러 소득사업을 시도했다. 인건비도 안 나올 때가 많았지만, 다 같이 힘을 모으는 과정이 중요했다. 우리끼리 바리스타 교육도 받고, 마을카페도 열고, 두부도 직접 만들어 팔아봤다.”

―최근에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2023년에는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받았고, 동신대랑 협력해서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을 시작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기 생산하고, 공유배터리 모빌리티, 스마트팜 등 시범사업도 하고 있다. 남는 전기는 한국전력에 팔아서 마을 수익으로 분배하려고 한다.”

사진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동시에 가능한 하이브리드 풍력기다. 위에서는 태양광, 아래에서는 원통형의 날개가 돌아간다.
사진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동시에 가능한 하이브리드 풍력기다. 위에서는 태양광, 아래에서는 원통형의 날개가 돌아간다.

국내외 방문 이어지는 에너지 자립마을

2023년 초, 동신대는 나주시와 협력해 신재생에너지 창업기업과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에너지 자립마을’을 찾아 나섰다. 입지 조건이 좋은 다른 마을이 있었지만, 일부 주민이 거세게 반대했다. 반면 대실마을은 “마을 주민 모두가 동의”해 최종 선정됐다. 나주시 봉황면 50개 마을 중 가장 작고 인구소멸 위험이 컸던 대실마을이 재생에너지 생산·판매부터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에너지 혁신’의 실험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정중기씨는 “마을이 가장 작고 인구소멸 위기였기에 오히려 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대실마을은 2023년 9월 하이브리드 풍력기 설치를 시작으로, 8개 창업기업과 동신대 학생들이 참여하는 신재생에너지 실증단지로 거듭났다. 동신대와 창업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마을에 설치·운영하며, 공유배터리 모빌리티(전기카트, 농기계 등) 등 시제품을 실험하고 개선하는 ‘리빙랩(생활실험실)’으로 활용했다.

2023년 11월 개소식 이후, 베트남·인도 등 해외 관계자와 국내 신재생에너지 마을 관계자들이 잇따라 방문해 ‘교육과 체험의 현장’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5월부터는 방문 체험교육이 유료화돼 마을소득이 생겼다. 또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스마트팜이 곧 문을 열어 마을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전망이다.

에너지자립마을을 추진한 이동휘 동신대 교수(협업형메이커스페이스사업단장)는 “대실마을의 사례는 에너지자립과 농촌 혁신, 그리고 주민 합의의 힘이 결합한 새로운 농촌 모델”이라고 말했다.

2023년 11월 개소식 이후, 베트남·인도 등 해외 관계자와 국내 신재생에너지 마을 관계자들이 잇따라 방문해 대실마을은 ‘교육과 체험의 현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실마을 제공
2023년 11월 개소식 이후, 베트남·인도 등 해외 관계자와 국내 신재생에너지 마을 관계자들이 잇따라 방문해 대실마을은 ‘교육과 체험의 현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실마을 제공

ESS 도입과 이격거리 완화는 남은 과제

그러나 에너지자립 실험은 아직 ‘진행형’이다. 마을에서 생산된 전기를 주민들이 사용하고, 남는 전기를 한전에 판매해 ‘햇빛연금’ 같은 기본소득 모델을 구현하려면 해결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첫째, 에너지저장장치(ESS) 도입이다.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하기 위해 ESS가 필요하지만, 예산과 규제, 안전 문제 등으로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김강정 나주시 의원은 “ESS만 제대로 갖춰지면 대실마을에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를 남김없이 저장하고 주민들이 필요할 때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며 나주시의 ESS 도입 예산 편성을 촉구했다.

또 다른 과제로는 ‘이격거리 규제’ 완화다. 이격거리 규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설치할 때, 도로·주택 등 주요 시설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행정적 제한이다. 주민 안전과 경관 보호를 위해서 도입됐지만, 마을 규모가 작고 가용 터가 제한된 농촌지역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의 걸림돌이 된다. 홍길식씨는 “규제는 필요하지만, 에너지자립마을로 지정된 곳에는 예외적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실마을의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함께 살아가는 힘’으로 사라져 가던 농촌을 되살려냈고, 이제는 신재생에너지와 복지, 공동체의 미래까지 혁신하고 있다. 마을에서 생산한 에너지가 소득이 되고, 이웃과 밥을 나누며, 노후와 죽음까지도 함께하는 마을공동체. 대실마을의 다음 실험이 궁금해진다.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글·사진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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