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엔 글을 씁니다”…100명 작가 배출한 ‘수다쟁이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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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엔 글을 씁니다”…100명 작가 배출한 ‘수다쟁이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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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21) 부천시 원미2동 글쓰기교실
3월12일 오전 10시께 경기 부천시 원미구 원미2동 행정복지센터 2층 대강의실에서는 60~80대 어르신들이 A4 용지에 적힌 글을 경청하고 있었다. 글을 쓴 수강생 여운순(62)씨가 ‘목련꽃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수필을 낭독했다. 베란다 앞 자목련을 매일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시작해 장애를 가진 동생들을 돌보며 숨 가쁘게 달려온 60여년의 삶을 그려냈다. ‘그래, 그동안 애썼다. 수고 많았어.’ 마지막 문장이 끝나자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제목과 핵심 소재와 마무리, 이 세 가지가 딱 맞아떨어졌어요. 섬세하게 관찰하는 힘이 좋습니다.” 원미2동 글쓰기교실 ‘수다쟁이다락방’의 강사 박창수(62) 작가가 말했다. 수강생 김순자(72)씨도 의견을 보탰다. “ ‘그동안 참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문장이 ‘아, 그래 정말 열심히 잘 살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가슴이 뭉클했어요.” 글을 쓴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로의 삶을 배우는 시간이다.
목요일 오전의 수필 낭독
원미2동 글쓰기교실의 역사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사, 잡지사를 거치며 글쓰기를 몸으로 배운 박창수 작가는 1997년 독립해 프리랜서 작가 겸 기자로 살아왔다. 그런 그가 부천 원미2동에 뿌리내린 건 순전히 ‘마을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당시 박창수 작가는 부천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참여해 원미2동 동장 김현규씨를 인터뷰했다. 동장은 마을신문 창간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술 사시면 오죠”라는 빈말이 부메랑이 돼 박 작가는 주민 기자를 양성하고, 마을신문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 수업도 시작됐다. 처음에는 40~50대가 주축이었던 수강생들이 지금은 60~70대로 바뀌었다.
2012년, 수강생들의 글을 엮어 첫 공동 수필집 ‘글로 푸는 원미동 사람들’을 펴낸 뒤 코로나19 때(2020~2023년)를 제외하고 매년 책을 출간했다. 2024년 10월에는 여덟 번째 공동 수필집 ‘내 얘기 좀 들어볼래요?’가 나왔다. 지금까지 글쓰기교실을 거쳐 간 예비 작가는 100여명,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한 이는 10여명이다.

3만원, 첨삭, 그리고 3박자
글쓰기교실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다. 수강료는 한 달에 6만원인데, 65살 이상은 50%를 할인받는다. 수강생들은 화요일 정오까지 자신이 쓴 원고를 박 작가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박 작가는 한 편 한 편 첨삭해 개별 메일로 돌려보낸다. 수업 당일에는 첨삭된 원고를 주민자치회에서 프린트해 와서 순서대로 발표한다. 발표 후엔 강사와 수강생 모두가 ‘좋았던 문장’ ‘더 다듬으면 좋을 부분’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20~30분은 이론 강의 시간이다. 문장론, 글감 찾기, 언어 선택의 중요성 같은 주제가 돌아가며 다뤄진다.
박 작가의 수필 철학은 단순하다. “제일 잘 쓴 글은 쉽게 쓴 글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100살 노인까지 다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합니다.” 문장을 꼬지 말 것, 멋 부리지 말 것, 감정과 감성, 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것. “수필은 사색의 문학, 진실의 문학”이라는 말을 수강생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다.
이론 책은 따로 추천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첨삭 지도, 개별 피드백,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쓰는 것, 이 삼박자가 맞아야 느는 거예요. 제가 15년 지도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박 작가의 말이다.

15년을 버틴 세 가지 힘
글쓰기 수업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수강료가 5천원만 더 저렴해도 다른 동으로 옮겨가고, 사회 변화에 따라 수요도 출렁인다. 그런데도 원미2동 글쓰기교실은 어떻게 15년을 버텨왔을까.
첫째, 강사의 헌신이다. 박 작가는 경기 고양시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네 번 갈아타고 원미2동에 오고, 매주 수강생 원고를 하나씩 손수 첨삭한다. 강사료가 충분하지 않아도 15년간 결석이 없었다.
박 작가는 꼽는 원미2동 글쓰기교실의 특별함은 ‘정’이다. “된장, 고추장을 갖다 주고, 김치까지 챙겨주는 분들이에요. 스승의 날에 꼭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제자들도 있고요. 그런 정 때문에 잊을 수가 없죠.”

“글 쓰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둘째,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10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삶을 공유하고, 봄·가을에는 함께 소풍도 간다. “성격 모난 분, 이기적인 분은 못 버텨요. 기존 회원들의 분위기가 이미 그 사람을 감싸고 있거든요.” 박 작가의 말이다.
십년 전부터 수강해온 김순자씨는 글쓰기교실을 “대화할 수 있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암 환자도, 우울한 사람도, 다 힐링을 하고 치유를 받아요.” 처음엔 서로 속마음을 꺼내놓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솔직한 이야기를 글로 내놓으면, 하나씩 둘씩 마음의 문이 연다. “글솜씨도 늘고, 우리는 더 끈끈해지는 거예요.”
신인순(73)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깡촌에서 자라 결혼 후에도 마음고생이 많았던 그는 상담도 받아봤지만, 글쓰기가 더 효과가 있었다. “슬프거나 속상하면 예전에는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는데, 글을 쓰고 나서는 많이 희석되고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한 세기를 산 사람이잖아”
최고령 수강생인 안숙자(87)씨는 원미2동 글쓰기교실의 문을 두드린 건 2024년 초였다. 행정복지센터 게시판에서 우연히 강좌 공고를 봤다. “자서전 한 권은 꼭 펴내야겠다는 꿈이 있었”던 그는 바로 등록했다. 이제는 글쓰기교실을 잊어버릴까 봐 달력에 목요일마다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수업 시간이 엄청 기다려져요.”
1940년, 신의주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 살에 월남했다. 기독교 집안이었던 부모님과 다섯 형제자매가 공산주의 치하에서 숙청을 피하려고, 맨몸으로 옷만 입은 채 집을 나섰다. 안내원을 사서 38선을 넘다 붙잡혀 수용소에 한 달간 갇혔다. 풀려난 뒤 평양 친척 집을 거쳐 개성으로, 다시 서울 약수동에 정착했다. 6·25가 터져 공산군이 내려와 서울에 빨간 깃발을 꽂자 어머니가 기절했다. 1·4 후퇴 때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실향민으로 살아온 그의 삶 전체가 한국 현대사였다. “거진 한 세기를 산 사람이잖아요. 쓸거리가 많죠.” 안씨가 말했다.
그는 내년 말쯤 자서전을 펴낼 예정이다. “인생은 뭔가 남겨야 되잖아요. 자녀들한테 정신적 유산을 줘야지. 글로 마침표를 찍는 거야.”

말은 잔소리, 글은 감동이 된다
김순자씨는 사위들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굴곡진 삶을 책으로 펴냈다. 말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 자신의 성장 과장을 담았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 너희들도 힘내라, 하는 마음으로.” 사돈이 그 책을 읽고 연락을 해왔다. “사부인, 존경합니다.” 그 한마디에 김순자씨는 글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노인들이 대화할 곳이 별로 없어요. 자녀들한테 얘기하면 잔소리로 알아듣죠. 하지만 글은 달라요. 내 속뜻을 정확하게, 걸러서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받는 사람도 감동인 거예요.” 지역마다 글쓰기 교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역시, 글쓰기를 시작한 건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해서였다. “속상하고 막막할 때, 화내고 싶을 때 상대방에게 말로 하면 싸움이 돼요. 하지만 그걸 일기에 다 쏟아놓고 나면 후련해지죠.”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묵은 일기장을 들춰본다고 했다.

원미동은 원래 ‘문학의 동네’
셋째, 주민자치회의 지속적 지원이다.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온라인 채널로 새 수강생을 모집하고, 행사가 있으면 함께한다. 그 배경엔 원미동만의 정체성이 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이 된 이 동네는,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로 선정된 것과 맞닿아 있다. “문학이라는 게 원미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아요. 원초적으로 그런 토양이 있어요.” 김정원 원미2동 주민자치회장의 말이다. “물심양면으로 늘 곁에서 돕고 있어요. 평생 글 한번 써보고 싶었던 분들이 여기서 책을 냅니다. 이런 공간이 원미2동에 계속 있어야죠.”
‘우리 동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지방정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이 함께 참여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역 구성원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더 나은 공동체로 성장해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사회적경제, 청년·여성·노인 등 다양한 주체가 환경·문화·교육·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모으는 협력 프로젝트, 그리고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동네의 특별한 현장, 꼭 알리고 싶은 공동체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동네 이름, 추천 이유, 간단한 소개(사람·단체·프로젝트 등)를 ejung@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글·사진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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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516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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