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달랑 ‘1유로’…빈집에 상생과 활기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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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달랑 ‘1유로’…빈집에 상생과 활기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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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택과 빌라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을 걷다 보면 ‘1유로 프로젝트(1EURO PROJECT)’라고 적힌 흰색 건물 3채가 보인다. 몇 년간 비어 있던 목욕탕과 상가건물(A동), 그리고 마당이 있는 주택 2채(B·C동)가 팝업 전시 복합문화 공간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플랫폼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한국형 1유로 프로젝트 2호점 오픈
옛 상가와 주택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외관과 달리, 내부 인테리어는 유럽처럼 느껴져 많은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구경한다. A동은 임대 공간이지만 평소에는 공유오피스로 사용된다. B·C동에는 천연 소재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네이처픽’, 저강도 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모브플렉스’, 전통 식문화를 소개하는 ‘오복소점’, 수작업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우리서막’, 예쁘고 편한 옷을 만드는 ‘로투’ 등 다채로운 브랜드가 입주해 있다.
1유로 프로젝트는 유럽에서 출발한 도시재생 사업에서 시작됐다. 유럽 정부는 인구 감소로 버려진 공장이나 아파트를 매입해 1유로(약 1620원)에 10년 또는 50년씩 민간에 빌려주고, 민간은 임차인과 함께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운영해 낙후된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 네덜란드에서 건축과 도시 재생을 공부한 최성욱 오래된미래 공간연구소 대표가 “따로 또 같이 상생하는” 도시재생을 꿈꾸며 한국형 1유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는 건물주를 설득해 3년간 1유로에 빈집을 빌리고 서류 심사와 인터뷰 등을 거쳐 입점 브랜드(임차인)를 선발했다.

2022년 서울 성동구 송정동에 ‘북성수’점에 이어 지난 3월 ‘북가좌’점이 문을 열었다. 북성수점에는 17개, 북가좌점에는 9개 젊은 스몰 브랜드가 자리를 잡았다. 17년간 온라인으로 화장품을 판매하다가 북성수점에 첫 쇼룸을 낸 ‘핑크 원더’의 최금실 대표는 “핑크 원더는 (입점 브랜드인) 가죽 공방인 ‘베데레’와 립밤 케이스를,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베러 얼스’와 실리콘 파우치를 함께 선보였다”며 “1유로 프로젝트 입점 브랜드끼리 협력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빈집 리모델링 공사비는 건물주와 입점 브랜드가 함께 부담한다. 전기, 설비는 건물주가, 개별 인테리어와 화장실, 복도 등 공용 공간 사용료, 운영 관리비는 입점 브랜드가 n분의 1로 나눴다. 북성수는 3년마다, 북가좌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한다. 최성욱 대표는 “건물주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공간을 바꿀 수 있고, 입점 브랜드는 보증금과 월세를 내지 않고 입점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빈집 13만호…종합 대책 부실
인구 감소로 빈집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대책이 모색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빈집은 13만2052호이며, 도시 4만2356호, 농촌 6만6024호, 어촌 2만3672호로 각각 집계됐다. 빈집 관리를 위해 ‘농어촌정비법’과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도시와 농·어촌에 적용되는 법률이 다르고 담당 부처도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로 나뉘어 있어 종합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1유로 프로젝트 북가좌점에서는 한국부동산원이 ‘빈집활용: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한 정책 제언’이라는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전문가들은 일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해외 주요 국가의 정책 사례와 경험을 공유하며, 국내 빈집 정책이 나아갈 방향성을 논의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일본: 빈집 지도 제작해 건물주에 알려
일본 총무성은 2023년 10월 기준으로 빈집 수가 900만 호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5년간 51만 채가 늘어난 수치로, 총 주택 수에서 빈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13.8%이다. 일본은 2014년 ‘빈집 등 대책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고, 2020년에는 악취, 붕괴 위험 등 다양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
최근에는 사후 조처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빈집 정책이 전환되고 있다. 관리하지 않는 빈집을 지도에 표시하고, 이를 통보해 건물주에게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로도 개선되지 않으면 세금 혜택을 제한하는 등 보다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
빈집 활용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시가현 타쿠시의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유치원, 아동관, 육아지원센터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유아지원시설로 탈바꿈했다. 도쿠시마현 미나미쵸의 빈집은 지방정부가 사들여 위성 오피스를 유치했는데, 기업들이 도심에서 벗어나 지방에 거점을 마련하도록 지원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빈집을 창업·커뮤니티 공간이나 관광 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영국: 빈집 주택세 400% 중과
2022년 10월 기준으로 영국의 빈집은 67만 6304호였으나, 2024년 10월에는 71만 9470호로 증가했다. 빈집이 발생하는 이유는 지역별로 다르다. 런던은 투자자들이 주택을 매수한 뒤 시세차익만 노리고 공실로 두는 경우가 많다. 웨일스는 세컨드 홈의 수가 증가하고, 리버풀은 지역 쇠퇴로 인한 빈집 발생이 흔하다.
빈집 관리 정책으로 영국은 주택세(council tax) 중과와 같은 조세 제도 외에도 관리 명령, 강제 매각 등의 권한을 활용한다. 주택세는 지방 정부가 쓰레기 수거, 치안 등 지역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 주택의 가치에 따라 부과되며, 주택을 임대하면 임차인이 세금을 내지만 빈집은 최대 400%까지 추가 과세할 수 있다.
빈집 상태를 개선하도록 건물주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한은 지방 정부가 갖는다. 파손 또는 방화 위험이 있는 경우 지방 정부는 건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도록 요구하며, 펜스 설치 등의 긴급 조처도 가능하다. 건물주와 협의가 잘되지 않아 빈집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방 정부는 강제로 매입할 수 있다. 또한, 자체 예산으로 빈집을 리모델링한 후 건물주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고, 미납 시 강제 매각할 수 있다.

프랑스: 빈 사무실을 거주용 주택으로
프랑스는 2020년 빈집을 매매 또는 임대 시장에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한 ‘빈집 해소를 위한 국가계획’을 수립했다. 강압적인 규제보다는 빈집 건물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째, 국가 차원에서 지방 정부에 빈집 확인, 분류 및 추적 관찰 시스템을 제공한다. 둘째, 빈집 건물주와 부동산 중개사의 의사소통을 강화해 빈집 매매 및 임대 시장을 활성화한다. 셋째, 빈 사무실을 거주용 주택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한다.
프랑스는 ‘연간세금’과 ‘거주세’라는 두 가지 종류의 빈집세를 운영한다. 연간세금은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으로,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지방 정부에 부과된다. 예를 들어, 임대료와 매매가가 높아 주택을 구매하거나 임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사회주택 단지의 연간 퇴거자보다 입주 대기자가 많거나, 주거용 주택보다 비주거용 주택 비율이 높은 지방 정부의 빈집(최소 1년 이상 거주자 없음)이 과세 대상이 된다. 거주세는 연간세금이 지정되지 않은 지방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지방 정부 조례에 따라 거주세 부과 여부를 결정하며, 2년 이상 연속으로 비어 있는 주거용 빈집이 그 대상이다.

네덜란드: 커뮤니티 회복이 목표
네덜란드의 빈집 정책은 커뮤니티 회복을 목표로 하며, ‘클루즈(Klux) 전략’이 대표적 사례다. 클루즈는 네덜란드어로 ‘일, 작업’을 의미하는데, 이는 개인이 직접 빈집을 개조하고 수리해 주거 공간으로 만드는 활동을 뜻한다.
클루즈 프로젝트는 지방 정부가 빈집을 1유로에 매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매매가를 1유로로 설정한 이유는 초기 비용 부담을 줄여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참여자들은 협의체를 구성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가 등 전문가가 기술적 지원과 자문을 제공한다. 로테르담과 암스테르담 등 네덜란드 주요 도시에서 성공적인 사례가 나왔다. 1990년대 로테르담은 저소득층 및 이민자 중심의 낙후 지역에 클루즈 전략을 도입했고, 인구 유입이 늘어나 지역 경제가 활성화됐다. 암스테르담에서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재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지방 정부가 주민들이 개발 계획을 제안하는 조건으로 1유로에 토지를 매각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건축가와 주민들이 협력해 새로운 주거 공간을 창출하며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글·사진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신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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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 기사 링크주소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1933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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