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스 #11 한국 복지의 궤적을 찾아 > 자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사람과디지털연구소 바로가기

자료

자료

뉴스레터 스피커스 #11 한국 복지의 궤적을 찾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28회 작성일 24-02-28 14:19

스피커스 #11 한국 복지의 궤적을 찾아

작성일 24-02-28 조회수 528회

본문

공유하기

  • 구글플러스로 공유
  • 페이스북으로 공유
  • 트위터로  공유
'여러분,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꼭이요'.

나흘 전 설날을 맞아 이 인사를 받아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이 말은 2001년 말 어느 카드사의 티브이 광고였습니다. 이후 ‘부자 되세요’는 꽤 오랫동안 새해맞이 최고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외상으로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는 게 카드입니다. 카드는 쓸수록 빚이 늘어나는데, 부자 되라는 광고는 참 얄궂습니다.

이 광고는 온 국민에게 고통과 수치를 안긴 외환위기의 깊고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일 때쯤 세상에 나왔습니다. 광고는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사회 안전망이 성긴 나라에서 부자가 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국민에게 호소력이 컸던 상술 아닐까요?

희망을 잔뜩 불어넣은 광고와 달리 현실에서는 열 명중 한두명밖에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각자도생해서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오래된 신화가 빚은 광고란 생각이 듭니다.

아래 질문은 시험이 아니니 그냥 편하게 읽고 답해보세요????.

  • 복지 혜택을 누가 더 받고 있을까요? 
  • 경제가 성장하면 불평등도 줄어들까요? 
  • 복지 지출을 늘리면 불평등 문제가 개선될까요?

이번 스피커스를 다 읽고 나신 뒤 다시 답해보길 권합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성공>을 읽다 책 쓴 이의 이력이 궁금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네요.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사회복지학자이지만 그가 펴낸 책을 읽다 보면 어느 때는 경제학자 또 어느 때는 역사학자, 정치학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지를 얘기하다 비례대표제를 논하고, 조선 시대 이앙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다시 경제사 산책을 시켜줍니다. 칸막이를 허물고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안내합니다. 한국 사회가 무슨 힘의 작용으로 어떤 궤적을 그리다 여기까지 올 수밖에 없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총 3권), ‘이상한 성공’ 등을 펴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했지만, 누구보다 깊게 한국 복지사의 궤적을 추적해온 연구자입니다. 오늘 스피커스의 주인공은 윤홍식 교수입니다????. 


지난 1월 서울에 있는 윤 교수의 자택에서 1시간 반 남짓 인터뷰했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소셜코리아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기획(‘다시 한국의 불평등을 논한다’)의 일환이었습니다. 2월에 다시 만나 나눈 얘기를 보탰습니다. 한국의 복지 궤적을 추적해온 윤 교수가 뭐라고 했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① 성공의 덫에 빠진 나라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은 아주 예외적 사례입니다. 이제 한국은 그토록 갈망했던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공의 방정식이 되레 덫이 되어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숱한 문제를 잉태했습니다.


윤 교수는 1960년대부터 곳곳이 단절되었지만, 추세를 엿볼 수 있는 지니계수(0~1 사이 값으로 작을수록 평등) 값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 놓고선 말합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 복지체제의 황금기’이자 ‘한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분배 즉 빈곤과 불평등 지표가 개선되는 낙수효과(trickle down)가 작동했던 이례적 시기였습니다. 공적 사회지출(쉽게 말해 복지비)을 크게 늘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낸 일입니다. 하지만 이후 성장해도 낙수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1960년대 권위주의 정권이 추진한 개발 방식은 성장 제일주의였습니다. 수출 대기업이 중심에 서게 되죠. 안타깝게도 자본과 국가가 균형을 이루는 시민사회는 싹트지 못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적 방식의 통제가 사라지고 속박에서 벗어난 자본의 일방적 성장이 이뤄지게 됩니다. 90년대를 지나면서 대기업은 이른바 ‘신경영전략’을 도입해 숙련노동을 자동화로 대체합니다. 사람을 대신한 로봇의 밀도가 일본이나 독일의 거의 3배가 됩니다. 로봇이 빠르게 사람을 밀어냈습니다.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가 줄고 외주화로 불안정 일자리가 많이 증가했습니다. 그때부터 수출 대기업이 성장해도 중소기업과 내수의 동반 성장이 미약해졌습니다. 대기업 수출이 국내에서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아주 낮다는 지표가 이를 잘 말해줍니다. 대기업 고용도 전체의 10% 남짓에 불과합니다. 성장이 되레 불평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 구조가 형성된 거죠.

② 각자도생 사회의 기원

과거 한국의 빈곤과 불평등이 크게 줄었던 건 국가가 뭘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도 성장기 복지 확대는 아주 미미했습니다. 짐을 나눠서 지고 함께 힘을 모으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윤 교수가 ‘개발국가 복지체제’라고 부르는 시기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불평등이 줄었던 건 정말 열심히 각자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독특한’ 성공 경험이 한국의 복지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직접 모내기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지금은 이앙기로 하지만 예전엔 사람이 줄을 맞춰 모를 논에 심었죠. 윤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뒤 처음으로 ‘이앙법’이란 단어를 들은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 이앙법은 농업 생산성을 향상한 혁명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직파법이었습니다. 볍씨를 논에 흩뿌리는 방식이었죠. 이앙법으로 노비를 통한 생산 체계가 해체되고 소농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지독하게 일해서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켜야 했죠. 소농 사회의 특징은 수백 년 시차를 두고서 현대판 각자도생 경쟁 사회와 연결됩니다.

③ 복지를 앞지른 사적 자산 축적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금융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수익률과 안정성 모두 국민연금이 훨씬 낫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어느 쪽에 돈을 더 붓고 있을까요?


지난 2016년 통계를 보면 국민연금 부담액은 22조원입니다. 개인연금은 그보다 많은 35조원입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끼리 이런 농담을 한답니다. 개인연금이나 실손보험 등을 다 없앤 뒤 그 돈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투입하면 모든 질병을 무료로 치료하고 모든 노인의 노후를 보장할 수 있다고. 우리 국민이 민간 연금과 보험을 더 신뢰하는 이유는 각자도생의 역사적 경험과 궤적에서 비롯된 특징이랍니다.

짐작하시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경제규모(GDP)에 견줘 복지 지출(15%)이 아직도 적은 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밑돌죠. 그런데 복지 지출을 더 늘리면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까요?
① 역진적 선별주의 복지체제

먼 얘기이지만 2060년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이 GDP 대비 25%(4차 사회보장 기본계획)까지 늘어난답니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보건이나 노령, 고용 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지출은 계속 늘어나는데 일반 재정의 비중은 되레 줄어듭니다. 좀 어렵게 들리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정규직의 거의 95%가 가입한 고용보험 가입률을 전체 취업자로 확대하면 절반에 그칩니다. 자영업자의 가입률은 0.5%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사회보험 지출을 늘리는 식으로 복지를 확대하면 보험에 가입해 기여금을 꾸준히 낼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 일자리와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더 받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40년 뒤에도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않나요. 사회적 안전망이 어떤 계층에게 더 필요할까요? 당연히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고 있거나 저소득층이겠죠. 그런데 지금 한국의 복지 체계는 취약계층보다 안정적인 소득과 일자리를 가진 계층을 위한 복지입니다. 윤 교수는 이를 ‘역진적 선별주의 복지체제’라 부릅니다. 쉽게 말해 ‘거꾸로 복지’입니다. 


한번 확인해볼까요. 놀랍게도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전체 공적 소득이전(정부의 소득 지원)의 몫 가운데 하위 계층보다 중산층의 비중이 더 커졌습니다. 공적 복지의 탈빈곤 효과를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눠보면 한국의 복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정규직에 훨씬 우호적입니다. 사회보험 중심으로 복지가 늘어난 궤적의 영향입니다. 그러니 복지의 양만 늘린다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 순 없겠죠.

② 복지 지출의 역설을 보여주는 미국과 남미

미국과 스웨덴 중 GDP 대비 복지비 지출이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짐작하시는 것처럼 스웨덴의 지출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2020년을 지나면서 미국이 스웨덴을 거의 따라잡습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불평등이나 빈곤, 사회적 문제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코스타리카 등은 사회지출이 OECD 평균을 넘어섰지만 소득 불평등이 매우 큰 나라입니다. 반대로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회지출을 하는 네덜란드는 우리보다 평등한 사회입니다. 아일랜드도 사회지출이 우리보다 적지만 불평등 개선 효과는 더 큽니다.


북유럽과 서유럽은 동일한 지출(엄밀히 말하면 GDP 대비 사회지출의 비중)로 어떻게 우리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요? 윤 교수는 이들 나라에선 좋은 일자리 확대와 맞물려 사회보험 확장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가 적고 비정규직 등 불안정 고용이 정말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불완전 고용을 확대하는 성장 체제와 맞물리면서 노동시장의 격차가 복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이중 격차’ 문제를 낳았습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소득을 지닌 계층은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 체제의 주변부에 위치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③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윤 교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줄이려면 돌봄과 교육 등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서 궤도를 바꿀 정치적 힘도 나올 수 있답니다. 


그러면서 1960~90년대까지 새로운 일자리 가운데 90%를 지방 정부가 만들어낸 스웨덴 사례를 들려줍니다. 대개 돌봄, 교육, 보건의료 쪽 일자리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공공부문을 확장한다면 어떤 일이 빚어질까요? 철밥통이란 말로 응축된 공무원을 향한 싸늘한 시선, 오랜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생긴 국가에 대한 불신, 작은 정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 자원을 쓸데없는 곳에 배분해 낭비할 것 같은 의구심 등 숱한 도전과 저항이 눈앞에 선합니다.  


이미 고착화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해결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노동시장의 정상화를 넘어서 ‘역진적 선별주의 복지체제’의 전환을 위한 답이기도 합니다. 이는 지난 60년 한국의 성장 전략이 낳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길입니다. 윤 교수는 과거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방식을 이제 바꿔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스피커스 전문은 쾌적하게 보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목록으로 이동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3층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