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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도구 된 능력주의...‘우월’ 아닌 ‘탁월성’ 중시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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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도구 된 능력주의...‘우월’ 아닌 ‘탁월성’ 중시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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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더 이상 공정한 기회와 노력의 상징이 아닌, 엘리트 세습을 위한 강력한 도구로 변질됐다.”
오는 23일 열리는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능력주의의 함정: 엘리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을 맡은 대니얼 마코비츠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엘리트 세습’(원제 ‘능력주의의 함정’)의 저자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적 성취의 지표인 시험 점수, 학력, 경력 등은 공정한 기회만 주어지면 누구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고귀한’ 성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엘리트가 독점한다고 꼬집었다. “능력주의는 승자처럼 보이는 엘리트에게도 과로와 자기 소외를, 실패한 이들에게는 모욕을 안겨, 포퓰리즘의 득세,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진다”며 “우월함이 아닌 탁월함을 중시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마코비츠 교수와의 일문일답.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으로 이어지나?
“능력주의는 성취를 기준으로 우월적 지위를 분배하기에 어느 집단도 재능이나 노력을 독점할 수 없고 누구나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취는 재능, 노력, 훈련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좌우된다. 현실에서는 각 세대의 엘리트들이 자녀를 위해 최적의 훈련과 교육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그들의 자녀들이 능력주의 기준에서 볼 때 뛰어난 성과를 내도록 한다. 이런 방식으로 엘리트는 특권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며, 능력주의는 이를 실현하는 사회적 기술이 되었다.”
마코비츠 교수는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들이 고소득 전문직을 장악해 교육과 소득이 맞물린 강력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확인된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엘리트들이 자녀를 로스쿨과 의대에 보내기 위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교육의 투자 수익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최근 몇년 동안 엘리트들의 교육 투자 수익률이 증가한 것은 기술 변화가 특정 기술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과 관련이 깊다. 기술은 순수한 과학적 논리가 아닌 사회적 구조와 인센티브에 좌우된다. 그 결과 초엘리트 노동자들이 독점한 기술의 가치는 점점 커지고, 혁신의 방향도 엘리트가 보유한 기술에 유리하게 맞춰지면서 그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생산성 증진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교육이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 누구든 노력을 통해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겨져 왔지만, 마코비츠 교수는 혈통, 유전에 의한 세습 대신 자녀에 대한 막대한 교육 투자를 통한 ‘엘리트 세습’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왜 교육이 엘리트 세습의 핵심 기제인가?
“중요한 것은 능력주의 초기 시절에만 교육이 의미 있는 평등한 기회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과거 귀족 엘리트들은 그리 근면하거나 똑똑하지 않았기에 능력주의가 성과를 기준으로 우월한 지위를 배분하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배제되었던 이들이 앞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능력주의 엘리트는 지난 경쟁에서 얻은 지위를 바탕으로, 자녀에게 많은 자원과 열정을 투입한다. 그 결과 능력주의로 무장한 엘리트의 자녀는 또 다른 능력주의자가 되고, 이 과정에서 특권은 점점 견고해진다. 과거의 귀족은 토지, 공장, 주식이라는 형태로 부를 대물림했지만, 지금은 교육과 인적 자본을 통해 자녀에게 지위와 부를 물려준다. (능력주의 상속 계산에 따르면) 상위 1% 자녀 1명의 상속액은 1천만~1500만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매우 높은 나라로 꼽힌다. 엘리트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이하의 부모들도 자녀 교육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높은 교육열은 과거 급속한 성장의 원동력으로 간주되었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갈등과 불신의 온상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교육이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나?
“오늘날 교육과 노동을 기반으로 새로운 유형의 귀족 계급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성취에 기반한 것이기에 유전에 따른 것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으로 인해 엘리트는 자신의 지위를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고 남용하며, 배제된 집단은 체제에 원한을 품고 포퓰리즘적 분노와 증오로 돌아선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의미 있는 성공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배제된다. 하지만 엘리트 계층은 실패한 이들의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불신과 분노가 자라나게 된다.”

―교육이 사회적 이동성에 기여할 수는 없을까?
“우수한 공교육과 개방된 고등교육 기관은 여전히 사회적·경제적 이동성의 핵심 통로다. 예컨대 미국의 커뮤니티칼리지 제도는 여전히 이동성의 중요한 축이다. 이런 시스템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명문 대학들도 문호를 개방해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전학 오는 학생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패자에게 단순히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넘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 실패했다는 도덕적 모욕을 안기고 존엄성을 훼손해,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유럽의 포퓰리즘 정치를 낳은 심리적 토양이 되었다고 말한다.
―능력주의는 어떻게 트럼프 현상으로 이어졌나?
“기존의 (신분제에서의) 불평등은 부당함이 명백히 드러나지만, 능력주의는 이와 달리 일정한 도덕적 기반을 지니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고 모욕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불이익을 당한 이들이 그 원인이 자신 탓이라 공격받을 때, 분노를 외부 집단에 표출하거나 내면으로 삼킨다. 예컨대 자기보다 취약한 소수자나 이민자를 비난하거나, 중독·자살 등 자해를 시도해 스스로를 ‘절망의 죽음’으로 내몬다. 이런 현상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의 핵심적 모티프가 된다.”
―능력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위기의 중심에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제도에 대한 불신이 있다. 능력주의가 확산하면서, 대다수를 배제하는 교육 제도가 오히려 공정과 탁월함의 표상으로 여겨지고,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을 사실상 착취하는 은행·법률 시스템이 혁신으로 포장되고 있다. 이처럼 이념과 자신의 경험 간 괴리가 커지게 되면 대중은 핵심 제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이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확산의 토대로 작용해, 포퓰리스트에게 ‘오직 나만이 이를 고칠 수 있다’며 제도를 공격할 기회를 제공한다.”

―당신은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고성과·고소득 엘리트도 과로와 시간 부족 등으로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최상위 노동자들도 높은 소득을 얻기 위해 길고 강도 높은 노동 시간을 견뎌야 한다.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질 경우 자신이나 자녀가 엘리트 계층에서 탈락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엘리트 부모에게 태어나는 것은 성공의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엘리트조차 피로와 하향 이동 위험, 자신의 능력을 시장가치에 맞게 개발하고 투입해야 하는 압박을 받으며, 이로 인해 자기 소외감을 경험한다.”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며, 중산층과 엘리트 모두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엘리트 교육이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구상하고 있는 저항 방식은?
“능력주의의 우월성 중심 사고를 ‘탁월성’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능력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쟁적이기에, 남보다 뛰어날 때 가치를 부여한다. 내가 그 일에서 아무리 잘하더라도 누군가 나 보다 앞서나가면 ‘자격’을 잃는다. 또한 어떤 경쟁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지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마치 초단타 매매자의 거래가 사회적·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지만, 거래 플랫폼에서 몇 밀리초 차이로 막대한 사적 이익을 얻는 것과 흡사하다.
반면 탁월함은 가치 있는 일을 충분히 잘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남을 이겨야만 인정받는 경쟁과 달리, 남보다 조금 못해도 여전히 자신만의 탁월함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탁월함은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어야 한다는 실질적 기준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파괴적 경쟁을 내려놓고 모두를 위한 탁월함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를 위해 모두에게 충분한 재정지원, 질좋은 교육 등을 통해 탁월함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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