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독박돌봄엔 AI 로봇도 운다 [두런두런 AI ㉗]
페이지 정보

독박돌봄엔 AI 로봇도 운다 [두런두런 AI ㉗]
본문
드라마 ‘간호중’의 한 장면을 챗지피티로 가공해 만들었습니다.
‘AI와 함께 돌보다’ 세미나, 내맘대로 참관기
무려! 9년 전 수상작입니다.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가작을 받은 김정혜진 작가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2020년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간호중’으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 TRS는 ‘Trusting a Robot’ Study의 줄임말인데요, 간병로봇 TRS는 7년째 의식이 없는 환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환자의 아들 성한은 TRS의 도움 덕분에 간병을 하면서도 직장에 다닐 수 있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죠. 효심만으로 감당하라고 하기엔 간병의 무게가 너무 큽니다. 성한은 점차 극심한 우울에 빠져듭니다. 성한의 짙은 어둠을 알게 된 TRS는 섬뜩한 결론에 이릅니다. 환자가 깨어나 건강을 되찾거나, 아니면 세상을 떠나야 성한의 고통이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TRS는 어떻게 해야 성한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이상행동’을 하게 됩니다. 성한의 행복을 위해 번뇌와 고민을 거듭하는 TRS를 어떻게 단순한 기계로만 볼 수 있을까요?
좀 극단적 시작이었군요. 9월부터 기획기사 ‘노인을 위한 AI는 있다’를 연재 중인 이주현 기자는 22일 ‘2026 레하홈케어’(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를 찾았습니다. 전시 딸림 행사로 기획된 ‘AI와 함께 돌보다’(AI 시대 통합돌봄 네트워킹 세미나)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죠. 강남대 실버산업연구소, 에이징커뮤니케이션센터,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함께 준비한 행사예요.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연구소장의 기조발제가 흥미로웠습니다. ‘통합돌봄 시대, AI와 로봇은 내집·내지역 생활을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였습니다. 올해 3월27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고령·장애·질병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자신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의료·요양·돌봄 등의 서비스를 통합해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통합돌봄의 핵심 공간은 ‘집’입니다. 김 소장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주거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주거의 진화 단계는 이렇습니다. △1단계는 사전에 설정된 기능만 수행하는 ‘전기 주택’입니다. △2단계는 거주자에게 맞춰 설정된 기기를 갖추고, 거주자의 행동 패턴을 제한적으로 학습해 반영하는 ‘맞춤형 주택’이고요. △3단계는 인공지능이 거주자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외부 스마트 기기와 연계해 필요한 상황에 미리 대응하는 ‘사전대응형 주택’입니다. △4단계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정서적 교감을 비롯한 고차원의 돌봄을 제공하는 ‘지원형 주택’ △마지막 5단계는 가사·돌봄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피지컬 에이아이를 갖춘 ‘동반자형 주택’입니다. 소설 속 TRS가 집에서 돌봄을 맡는 모습을 떠올리면, ‘동반자형 주택’이 어떤 모습일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네요.
중요한 대목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돌봄 현장에서 사람이 맡는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점입니다. 현재 돌봄노동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고령화로 돌봄 수요는 늘고, 청년 인력은 줄어들 텐데, 급증하는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돌봄 인력의 처우를 개선하고 공적 서비스를 확충하는 한편, 에이아이와 로봇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날 김 소장은 고도의 기술 발전을 전제로, 돌봄 현장에서 사람에게 어떤 역할이 남고 또 새롭게 요구될지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사회복지사의 역할 변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현재 돌봄 현장에서는 식사·목욕·이동 등 일상생활을 돕는 실무 역량이 중요합니다. 돌봄 대상자와 신뢰를 쌓는 감수성도 필요하고요. 주거 기술이 발전하면 이런 역량에 더해 새로운 역할도 요구됩니다. 디지털 기기를 거주자에게 맞춰 설정하는 ‘맞춤형 주택’에선 스마트폰 앱 같은 디지털 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스마트 조력자’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사전대응형 주택’에선 거주자와 관련된 각종 데이터를 읽고 분석해 지역사회의 어떤 서비스와 연결할지 판단하는 역량이 필요해지고요. ‘지원형 주택’에선 거주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심층 심리 돌봄, 알고리즘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핵심입니다.
그러면 ‘동반자형 주택’ 단계에 이르면요? 김 소장은 사회복지사가 ‘전인적 케어 생태계의 지휘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과 기계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까지 고민하고 조율하는 역할이죠.
그는 일본의 유명한 반려로봇 ‘파로’에 강한 애착을 보인 한 이용자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파로를 사용하자 화가 나 파로의 털을 마구 뽑았다는 겁니다. 파로는 아기 물범 모양의 로봇인데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로봇이 갈등의 중심에 놓이기도 하는 것이죠. 이런 갈등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봇이 일상 깊숙이 들어올수록 사람과 로봇의 관계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조율하고 해결하는 역할도 중요해지겠지요.

물론 김 소장은 이런 ‘동반자형 주택’이 언제쯤 등장하거나 널리 보급될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그 혜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돌아갈지는 예측하기 힘들죠. 하지만 “그 방향은 맞다”고 강조했습니다. 돌봄은 물리적 수발을 맡는 ‘손’ 중심에서 데이터 해석과 심층 상담, 윤리적 판단을 담당하는 ‘머리’와 ‘가슴’의 역할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과 ‘이렇게 가야 한다’는 목표는 다르죠. 김 소장은 “돌봄 미래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인간이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돌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런 미래는 기술이 발전한다고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돌봄’을 어떻게 가능하도록 하느냐에 있겠지요. 무엇이 인간다운 돌봄일까요?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라는 소설은 이 문제를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돌봄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돌봄의 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인간다운 돌봄’이 가능할까요? 이날 세미나에 앞서 열린 ‘통합돌봄 북콘서트 : 100세 시대, 부모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서 ‘한국에 없는 마을’을 쓴 황교진 작가(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서 울면서 돌보는 게 최악이다.”
글·사진 이주현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기자 edigna@hani.co.kr
관련링크
- 이전글쓰다듬고 눈 맞추는 물범 인형…21년 된 돌봄로봇 ‘파로’는 왜 사랑받나 26.10.26
- 다음글클로드야, 똑똑해진 건 알겠는데…책값은 어쩔 거야? [두런두런 AI ㉖] 26.10.21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