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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단절, ’독박 육아’ 현실… 여성 84% “출산은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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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단절, ’독박 육아’ 현실… 여성 84% “출산은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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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전반 성평등 수준에 대한 남녀 인식 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보는 현실은 남성보다 훨씬 비관적이었다. 이러한 격차가 출산과 결혼을 더욱 기피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겨레가 여론조사업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44살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9월10~13일)를 보면, ‘나는 자녀를 낳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출산 의향)는 항목에 여성은 48.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남성은 그 비율이 65.4%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남녀 성별 인식 차이는 결혼 의향에서도 드러난다. 남성의 71.8%가 ‘나는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여성은 56.8%만이 긍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생 사회인 한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결혼하길 더 원치 않고, 자녀 또한 덜 바란다는 뜻이다. 그 바탕에는 결혼과 출산이 여성에게 손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결혼은 여성에게 손해다’라는 항목에 남성의 35.3%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여성은 그 비율이 무려 72.6%에 이른다. 차이가 두배 넘는다.
출산에 대한 질문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출산은 여성에게 손해다’라는 항목에 여성은 84.4%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남성은 그보다 훨씬 적은 51.7%에 그쳤다. 여성들의 이런 인식의 기저에는 한국 사회의 ‘재생산 구조’가 자신들에게 훨씬 불리하게 작동한다는 암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여성들의 기대는 커졌는데 가족과 직장은 뒤처지는 제도적, 문화적 지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집단적으로 보면 최악의 결과이겠지만, 젊은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20대 중반 김아무개씨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인턴을 하면서 돈도 벌고 경험도 쌓고 있다. 그녀는 아직 먼 일로 생각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할 수도 있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자녀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다.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포기해야 할 거 같아서다. 주변 선배 여성들로부터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숱하게 들어온 터였다. 그녀는 출산이 여성에게 손해라고 봤다.
결혼 생활로 인한 가사와 출산 뒤 양육 분담을 둘러싼 남녀 간 인식 차도 적지 않다. ‘부부간 가사 분담이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항목에 남성은 75.4%, 여성은 그보다 적은 64.1%만이 동의했다. 양육 분담에 있어서도 남성은 68.2%, 여성은 55.7%가 공평하다고 답했다. 가사와 양육 분담에서 남성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성이 바라보는 현실이 훨씬 비관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성평등한 역할 분담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이처럼 자녀 출산과 육아를 놓고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상황은 저출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성별 태도의 격차가 클 때 여성의 출산 의향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서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현실을 놓고서, 남성은 공평하다고 인식하고 여성은 불공평하다고 보면서 남녀 간 인식의 간극이 커질 때 여성은 출산을 기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출산에 따른 부담을 남성이 외면할 가능성이 커져 상대적으로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 늘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성평등 환경과 관련한 질문에서도 성별 격차가 뚜렷했다. 우리 사회가 ‘남성이 더 살기 좋다’는 항목에 남성의 14.7%만이 동의했지만, 여성은 57.1%가 손을 들었다. 반대로 ‘여성이 더 살기 좋다’는 항목에서는 여성의 4.6%(남성은 38.2%)만 동의했다.
가정과 직장에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서도 여성이 더욱 심각하게 느꼈다. ‘가정에서 여성에 대한 처우’에 대해 여성은 61.2%가 차별이 크다고 답했지만, 남성은 36.7%에 그쳤다.
직장에서 차별을 묻는 항목에 이르면 남녀 인식 차는 더 커진다. 여성의 70.5%가 차별이 크다고 답했지만 남성은 그 비율이 38.6%에 불과했다.
조사를 맡은 김태영 글로벌리서치 전문위원은 “이번 조사에서 여성은 독박 육아, 경력 단절 등 출산과 육아에서 남성보다 더 큰 부담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확인됐다”며 “이로 인해 출산 의향이 남성들보다 낮고, 실제 저출생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성평등 개선에 대한 전망에서도 기대감이 42.7%에 그쳤다. 여성의 기대감이 더 낮긴 했지만 차이가 크지 않았다. 사회 전반 성평등 현실을 놓고서 남녀 인식 차가 크게 엇갈렸지만, 미래 전망에서는 비관적인 쪽으로 수렴하고 있는 셈이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한귀영 연구위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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