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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공공의 사용이 본질…‘올바른 건축’ 가르치는 학교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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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공공의 사용이 본질…‘올바른 건축’ 가르치는 학교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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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그래도 못다한 이야기’ 산문집 낸 건축가 김원
“남들은 나보고 못 한 말이 뭐가 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하소연도 못 하고 혼자 애태우다 몇줄 쓰는 거로 마음 풀 때가 많았어요.”
건축가 김원. 1943년생으로 경기중-경기고-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했고, 당대 최고 건축가인 김수근 휘하에서 일했다. 예술의전당 마스터플랜,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본원, 통일교육원, 러시아대사관, 백남준 ‘다다익선’(골조 설계) 등으로 명성을 쌓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영월 동강댐반대, 이상의집 살리기 등 환경·문화유산 보존 운동에도 앞장섰고, 상당수가 결실을 보았다.
영향력도 있고 발언권도 많이 주어진 듯한데 속으로 삭힐 말이 많았던 것일까. 최근 산문집 ‘그래도 못다한 이야기’(태학사)를 펴냈다. 2003년 첫 산문집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를 낸 이래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잇는 네번째 산문집이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자리 잡은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벽 한켠을 차지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년 제작)로 저절로 눈이 갔다. “진품은 일본에 있는데…”로 시작한 설명은 왜 아프리카 대륙 한복판에 바다가 그려져 있냐는 데로 옮겨가 기후변화 문제로 모아졌다. 먼 옛날 사하라 사막이 초원이었던 시절 거대한 내해(호수) ‘차드’가 있었는데, 조선시대 지도 제작자들이 아랍-중국을 통해 전승되던 것을 이어받아 그렇게 그렸다는 얘기였다. 지금은 호수 아니라 거의 늪이다, 그러고 보면 사막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된 것이냐, 기후위기가 얼마나 무섭냐 등등. 특유의 느긋한 말투에서도 위기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건축가라는 직업 때문에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건축의 본질은 공공의 사용에 기여하는 거예요. 개인 주택조차도 타인의 시각에 작용하는 거잖아요? 법적 규제, 건축주의 요구 등을 수용하려면 건축가는 자기 생각을 자제하고, 덜어낼 수밖에 없어요.”
건축가로서 그의 전성기는 한국 사회가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폭발적 성장을 거듭한 시기와 겹친다. 국가 주도로 진행된 굵직한 공공 문화 프로젝트도 많았다. 그 시기 대표작인 독립기념관·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예술의전당·국립중앙박물관(옛 중앙청) 등은 김원의 마스터플랜으로 현실화됐다. “질투심에서 지어낸 말”이라고 일축하면서도 쓴웃음 짓는 ‘5공 건축가’라는 표현은 이때 생겨났다. 책엔 이에 대한 논란과 뒷얘기들이 여러편 실려 있다. 가령, 독립기념관을 보자. 1981년 어느 날, 방송 토론에서 “풍수는 미신이 아니라 지구물리학”이라고 주장한 김원에게 “독립기념관 후보지 선정을 도와달라”는 제안이 정부에서 온다. 왜 일이 빨리 진척이 안 되느냐고 청와대가 연일 다그치던 때였다. 김원은 육군 헬기를 타고 다니며 땅을 찾았고, ‘택리지’도 인증한 명당, 천안 흑성산을 골라 ‘전통’(전두환 대통령)에게 ‘“좌청룡 우백호’’를 브리핑했다. 마스터플랜을 맡자 건축사무소 직원들이 반발했다. ‘살인마 전두환의 정통성을 조작하는 프로젝트를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김원은 “또 다른 사이비가 나서면 전두환 우상화 시나리오를 합리화시킬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청와대가 구상했던 ‘제5공화국 전시실’ 계획을 틀었다. 이 와중에 건축계에선 500억원짜리 독립기념관 설계를 따내기 위한 경쟁도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김원은 당시 쟁쟁한 건축가들이 벌인 경쟁과 암투를 짤막이 그러나 분명하게 적어놨다.
그는 지금까지 설계한 건축물 400여개 중 200개가량이 지어졌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주가 누구냐, 는 질문에 그는 잠깐 눈을 감더니 1970년대 후반 강남으로 거슬러올라갔다. 수출 주도 경제 성장에 사활을 걸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5년 한국종합전시장(코엑스) 건립을 지시했고, 육군 준장인 백행걸에게 건설을 총괄하도록 했다. 이즈음 김수근건축연구소에서 막 독립한 김원은 코엑스 설계 책임을 맡는 행운을 잡았다. “어느 날 백행걸이 부르더니 영국 견학 중 그려온 ‘버밍햄 전시장’ 메모를 들이밀며 그대로 베끼라고 했죠. 싫다고 버티자 “건축주의 말을 무시하면 계약을 파기하겠다”며 화를 냈어요.” 김원이 “건축주는 본부장님(백행걸) 아니라 수십년 동안 사용할 사람들”이라고 맞받자, 백행걸은 곧장 유리 재떨이를 던졌다. “너, 구속시켜버릴 거야!” 밉보였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중앙정보부)으로, 남영동(치안본부)으로, 서빙고(군 보안사)로 끌려가던 시절이었다. 김원도 겁이 더럭 났다. “지인의 형이 중앙정보부 높은 분이라는 얘기가 생각나서 말을 넣었더니 ‘나중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님하고 점심 식사 한번 하시죠’라고 얘기하라고 답이 왔어요. 그대로 전했더니 잠잠해졌지요.(웃음)”
김원은 책 곳곳에 건축은 자연과 역사의 맥락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돌아다녀 보면, 내가 평생 해온 건축과 다른 것들이 너무 많아요. 입면도를 그리고 거기에 예쁘게 그림을 그린 것들요. 창이 있어야 한다면 필요한 크기로 있으면 되지, 가로로 긴 게 낫냐, 세로로 긴 게 낫냐, 이런 걸 따지는 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요? 올바른 건축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래전부터 건축학교를 세우고 싶었어요.”
그는 후학을 기르길 꿈꾸며 일찌감치 경주에 땅을 마련해 놓았고 국제건축문화교류재단이란 법인도 설립해놨다. “아직은 공표하기 어렵지만” 대학 한곳과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었던 그 소망이 이뤄진다면, ‘꿈을 그린 행복한 건축가’라는 제목의 책도 가능할 것 같다.
글·사진 이주현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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