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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공유의 아버지’는 어떻게 AI에 맞서 민주주의 투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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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공유의 아버지’는 어떻게 AI에 맞서 민주주의 투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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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사람과디지털포럼의 특별기조강연자인 로런스 레시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크리에이티브커먼즈를 만든 저명한 법학자이자 미국의 진보적 정치개혁 운동가다. 디지털 시대 새로 제기되는 법적 쟁점부터 민주주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혁신적 활동을 이어왔다.
AI 시대, 가장 저명한 디지털 사상가
지난해 2월 ‘AI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킹하는가’(How AI Could Hack Democracy)라는 제목의 테드(TED) 강연에서 인공지능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면서도 “무서운 순간이지만 흥미진진한 순간”이라고 말해 큰 주목을 받았다. 오는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이번 포럼에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레시그 교수는 ‘AI와 민주주의: 새로운 위협과 우리의 선택’을 주제로, 인공지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레시그 교수를 상징하는 ‘크리에이티브커먼즈’는 미키마우스법(1998년, 소니 보노 저작권 연장법) 위헌소송 패배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미키마우스법은 저작권 보호 기간을 기존 50년에서 70년으로(개인), 75년에서 95년으로(기업) 연장한 법을 말한다. 세계적인 저작권법 전문가인 레시그 교수는 1928년 ‘스팀보트 윌리(Steamboat Willie)’라는 작품으로 미키마우스를 처음 선보였던 것처럼, 과거에는 자유롭게 차용하고 변형할 수 있었던 창작 환경이 현재는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하며 2003년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크리에이티브커먼즈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어떤 권리를 부여할지 직접 선택하도록 한다면 지식과 문화의 공유, 민주적 소통에 기여할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집단 지성 플랫폼인 위키피디아가 대표적 사례다. 크리에이티브커먼즈코리아를 만든 인물이자 레시그 교수와 친분이 두터운 윤종수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저작권법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저작권자가 스스로 일부 권리를 포기해 저작권을 약화해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창조적 발상”이라고 크리에이티브커먼즈를 소개한다.

AI가 인간적 취약점 공격해 민주주의 파괴
2000년대 중반 이후 레시그 교수가 정치개혁으로 관심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완벽한 논리와 증거만으로 의회에서 저작권법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다. 기업이 정치자금을 무기로 의회를 좌우하고 공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접근조차 어려운 근본적 상황을 바꾸기 위해 그는 직접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2015년 ‘개혁 대통령’을 표방하며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해, 정치자금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삼아 TV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으나 토론회에서 배제되자 사퇴했다.
그 후 정치개혁에 대한 레시그 교수의 관심은 인공지능기술로 인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협받는지로 옮겨갔다. ‘AI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킹하는가’라는 제목의 테드(TED) 강연에서 그는 명백히 부정적 의미로 ‘해킹’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인간의 약점을 악용해 참여도를 극대화하며, 특히 분열과 극단적 내용을 의도적으로 확산하고, 중독성 있는 콘텐츠로 사용자를 더 오래 플랫폼에 머물게 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약점을 공격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심지어 인공지능은 자동으로 혐오 집단을 식별하고 타깃팅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시민들 간 합리적 토론과 합의 형성을 무력화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레시그 교수는 “문제는 인공지능(AI)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약해서”라며 트리스탄 해리스(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전통적 해킹 개념은 컴퓨터 시스템의 보안상의 취약점을 공격하는 것이지만, 레시그 교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내재한 인간적 취약점을 공격해,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호된 민주적 숙의’ 대안으로 제시
레시그 교수는 ‘보호된 민주적 숙의’ 이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인공지능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한, 보호된 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수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다. 일반적 입법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보다 보호된 공간에서 숙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온라인 숙의 토론 시스템인 ‘DELIBERATIONS.US’ 플랫폼을 구축했다. 소규모의 다양한 그룹에서 정보에 기반해 대화하고 토론하며, 의견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데스크톱 모든 기기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도구를 활용해 대의민주주의를 개선하고,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독특한 강연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한 슬라이드에 한 단어, 한 구문, 또는 한 이미지만 넣는 극도로 미니멀한 방식을 사용한다. 각 슬라이드는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고 전체적으로는 완전한 스토리가 된다. 내용의 깊이와 전달 방식 모두에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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