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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좌관의 세계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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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좌관의 세계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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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논란’을 계기로 국회 보좌관의 세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에는 300명의 의원을 보좌하는 2700명의 보좌진이 있다. 이들은 법과 제도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한다.
보좌진은 정부 부처로부터 얻어낸 자료를 토대로 불합리한 사안이나 정책을 들추어내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장관·공공기관장들을 향해 송곳 같은 질의서를 작성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정책적 전문성은 물론 의제 선점, 이슈 제기 등을 위해 정무적 감각이 요구된다. 국회의원이 무대 위의 주연 배우라면 보좌진은 연출자에 비유된다.
1명 의원당 9명의 보좌진으로 거대 부처를 상대해야 하다 보니 업무량이 과중하고 노동 강도가 매우 세다. ‘저녁이 있는 삶’은 언감생심, 포괄임금제를 적용받아 월 20시간 이상의 초과 노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업무의 특성상 수시로 쏟아지는 공적 연락, 불규칙한 일정도 감내해야 한다. 의원에 대한 공적 보좌와 사적 지원의 경계가 불분명할 때도 잦다. 국회가 통과시킨 근로시간 단축 제도 덕분에 사회 전반의 노동 환경은 나아졌지만, 막상 이 제도의 도입에 큰 역할을 한 보좌진은 열외인 셈이다. 법을 만드는 곳이 법의 사각지대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종종 펼쳐지고 있다.
보좌진의 임면 권한은 전적으로 의원 개인에게 있다. 이른바 ‘파리목숨’인 보좌진의 고용안정을 위해 선발 절차를 표준화하고 객관적인 임용 평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지만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2022년부터 ‘30일 전 면직예고제’가 도입되었다.
보좌진은 정부 부처,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인사권을 쥔 의원에게는 ‘을’이다.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 외 사적인 지시 또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해,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는 이른바 ‘갑질’이 행해져도 쉽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민주당보좌진협의회 역대 회장단이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막아냈던 일등공신은 국회 보좌진이었다. 2019년 이정재 주연 화제의 드라마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무대 뒤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절절한 호소가 외면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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